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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천봉시주문(洪陵遷奉時奏文)

자료명 홍릉천봉시주문(洪陵遷奉時奏文) 저자 산릉도감(山陵都監) 편(編)
자료명(이칭) 홍릉천봉시주본(洪陵遷奉時奏本) , 洪陵遷奉時奏本 저자(이칭) 山陵都監 編 , 산릉도감(조선) 편(山陵都監(朝鮮) 編)
청구기호 K2-4835 MF번호 MF35-4081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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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0(광무 4년)
· 청구기호 K2-4835
· 마이크로필름 MF35-4081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산릉도감(山陵都監)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1.5 X 21.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가장(假裝)
· 수량 1책(冊)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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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00년(광무 4) 6월부터 8월까지 明成皇后의 능인 洪陵의 遷奉에 관한 奏本과 조정의 收議 내용 등을 정리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題는 ‘洪陵遷奉時奏文’이다. 不分卷 1冊(40張) 구성의 5침 線裝本으로, 표지는 문양이 없는 黃色 종이이며, 본문의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판식이 없는 筆寫本으로 行字數가 일정하지 않다. 권수면에 ‘光武四年(1900)六月’이라는 기록이 있어 본서의 작성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의 첫머리에 1900년 6월 21일 宮內府特進官 李載純이 올린 상소가 실려 있다. 명성황후홍릉1898년 국장 당시 지금의 청량리 지역에 조성되었는데, 이재순은 그 자리가 좋지 못하다는 점을 들면서 홍릉의 천봉을 주장하였다. 이에 고종이 時原任 議政과 2품 이상 대신들에게 이 문제를 논의하도록 하였고, 收議 결과 천봉이 최종 결정되었다. 본서에는 6월 24일 설치된 산릉도감의 應行事目, 산릉도감 관원의 명단을 정리한 別單, 도감 관원의 교체, 그리고 천봉 후보지로 거론된 健元陵의 좌우 언덕과 금곡, 양주 平丘驛, 용인, 양근, 수원 용주사 부근 등에 대한 조사 결과 등 8월 15일까지의 천봉 준비 상황이 정리되어 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홍릉의 천봉 지역은 8월 24일 妙積山 金谷(현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결정되고 산릉 조성 공역도 시작되었지만,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이때의 천봉은 결국 시행되지 못하였다. 그 후 1919년 1월 고종이 서거하자 중단되었던 금곡 홍릉의 공역이 재개되었으며, 그해 2월에 명성황후를 먼저 遷葬한 다음에 고종을 합장하여 능을 조성하였다.
특성 및 가치
 1900년에 진행된 홍릉 천봉의 논의 및 준비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장경희, 「고종황제의 금곡 홍릉 연구」, 『史叢』 64, 역사학연구회, 2007.KCI

집필자

강문식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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