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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침향례진설도(陵寢享禮陳設圖)

자료명 능침향례진설도(陵寢享禮陳設圖) 저자 김병학(金炳學)
자료명(이칭) 능침향례진설도(陵寢享禮陳設圖) , 陸寢享禮陳設圖 저자(이칭) 金炳學(1821 - 1879)編 , 김병학(1821-1879) 편(金炳學(1821-1879) 編)
청구기호 K2-4763 MF번호 MF16-1419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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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70(고종 7년)
· 청구기호 K2-4763
· 마이크로필름 MF16-1419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병학(金炳學)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2.0 X 21.0
· 판본 전사자판(全史字版)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5×16.3㎝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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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70년(고종 7)에 각 능침의 제물 진설을 일정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간행된 책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서명과 권수제는 모두 ‘陵寢享禮陳設圖’이다. 황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표지의 좌측 상단에 표지서명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單邊, 有界, 無魚尾이고 行字數는 11行20字의 全史字本이다. 총 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3면은 忌晨, 節享, 告由에 대한 陳設圖 揷圖가 있으며, 네 번째 면만 11행20자로 되어 있다. 간행 시기는 네 번째 면의 ‘當宁七年庚午十一月二十五日次對入 侍時領議政金炳學所啓…’라는 기록을 통해 1870년(고종 7) 이후임을 알 수 있다. 동일한 기록이 같은 날짜의 『承政院日記』에 실려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陵寢享禮陳設圖와 해당 문서의 작성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筵說 등을 수록하였다. 1870년(고종 7) 11월 25일 次對 자리에서 영의정 金炳學은 각 능침의 제물 진설이 일정하지 않다고 하면서, 이전 정조 대에 奉常寺에서 享儀圖屛을 제작하게 하였고 순조조에 筵席에서 이를 檢飭하도록 했으나 여전히 일정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이어 김병학은 앞서 간행된 『五禮便攷』에 수록된 健元陵陳設圖式을 예조를 통해 각 능침 및 봉상시에게 頒送하여 준수하게 하자고 요청하였다. 본서는 김병학의 건의를 받아들여 진설의 일정화를 목적으로 편찬된 것이다.
 능침 진설의 일정화는 김병학의 지적처럼 이미 정조 연간 때부터 추진되었다. 1788년(정조 12)에 간행된 『春官通考』에서, 山陵과 宮園의 제물 진설과 관련한 도설을 수록하여 일정화를 추진하였다. 또한 享儀圖屛 등을 간행하여 이를 추진하였다. 다만 享儀圖屛은 미처 반포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제물 진설이 일정하지 않아 그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1803년(순조 3) 승지 朴鍾淳은 각 능침에 제물을 진설하는 法式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능침에서 진설하는 圖帖을 봉상시에서 모아서 이를 가지고 이정하여 각 능침에 다시 보내기를 요청한 바 있다. 고종 대에도 앞선 논의들을 수렴하여 『오례편고』에 수록한 것으로 보이며, 『오례편고』의 내용을 중심으로 본서를 편찬하였다. 陵寢享禮陳設圖에서는 기신제와 절향, 고유제 등의 진설 도식을 수록하였으며, 친향 때는 기신제와, 告安祭 때는 고유제와 동일한 것이라고 부기하였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 후기 제향의 문제로 지적된 각 능침의 제물 진설 문제를 일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책이다. 고종 초 『오례편고』를 간행하는 등 의례를 전반적으로 정비하려는 과정에서 편찬되었다. 한편 본서를 통해 지금은 전하지 않는 『오례편고』의 내용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다.

집필자

이근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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