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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유(訓諭)

자료명 훈유(訓諭) 저자 외부(外部) 편(編)
자료명(이칭) 訓諭 저자(이칭) 外部(朝鮮)編 , 외부(조선) 편(外部(朝鮮) 編)
청구기호 K2-4749 MF번호 MF16-141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詔令·奏議類/詔令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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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2(광무 6년)
· 청구기호 K2-4749
· 마이크로필름 MF16-141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외부(外部)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7.0 X 17.8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0×14.0㎝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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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02년(광무 6)고종프랑스·벨기에 주재 特命全權公使 閔泳瓚에게 내린 訓諭 및 관련 國書들의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지서명은 ‘訓諭’이다. 표지가 2개인데, 본 표지는 흰색이며 재장 표지는 짙은 황색으로, 線裝本이다. 두 표지 모두 좌측 상단에 표지서명이, 우측 상단에 ‘光武六年’이라는 기록이 있다. 본 표지의 표지서명 왼쪽에 ‘(存案)’이라는 글이, 아래에 ‘駐箚法比特命全權公使閔泳瓚’이라는 글이 기재되어 있다. 재장된 뒤표지 이면에 ‘西紀一九七三年十二月/藏書閣再裝’이라는 글이 2행에 걸쳐 기재되어 있다. 본문에 앞서 필사 용지 1장을 비우고, 좌측에 ‘訓諭 閔泳瓚’, 우측에 ‘光武六年二月十七日’이라는 글을 기재하였다. 본문의 필사에 四周單邊, 10行, 朱絲欄, 판심제 상단에 ‘外部’가 인쇄된 印札空冊紙를 사용하였다. 본문 광곽 상단에 ‘訓諭駐法比公使’ 등의 기록이 있다. 필사 시기는 표지 우측 상단과 본문의 기록을 통해 1902년(광무 6) 이후임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에는 고종이 내린 5편의 문서가 수록되어 있는데, 奉勅官은 5편 모두 外部大臣署理 朴齊純이다. 각 글이 시작하는 부분의 상단 난외에 ‘訓諭駐法比公使’, ‘駐比公使接任國書’ 등으로 글의 핵심 내용을 기록하였다. 첫 번째 문서는 1902년 2월 17일에 고종민영찬에게 내린 訓諭이다. 『高宗實錄』에 따르면 고종1901년 12월 3일에 특명전권공사 민영찬에게 勅任官 3등을 서임하고 프랑스벨기에 두 나라에 주재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월 17일에 辭陛하는 민영찬을 召見했는데, 본서에 실린 훈유가 바로 이때 내린 것이다. 이 글에서 고종민영찬에게 상대국과의 우호·친선 도모에 힘쓸 것, 프랑스·벨기에에 주재한 각국 공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것, 각국의 사정을 탐지하게 되면 즉시 稟啓할 것 등을 지시하였다.
 두 번째 글은 같은 날(2월 17일)에 고종민영찬에게 내린 諭書로, 민영찬프랑스벨기에에 주재하는 특명전권공사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글은 각각 벨기에 大君主와 프랑스 大伯理[대통령]에게 보낸 국서로, 민영찬을 신임 특명전권공사로 파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섯 번째 글은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국서로, 민영찬의 전임자인 프랑스 주재 공사 김만수를 解任한다는 내용이다. 세 편의 국서도 모두 1902년 2월 17일에 작성되었다.
특성 및 가치
 1900년대 초반 대한제국프랑스·벨기에 사이에 수립된 외교관계의 일단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집필자

강문식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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