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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암입묘문부유신제가록(朝宗巖立廟文附遺臣諸家錄)

자료명 조종암입묘문부유신제가록(朝宗巖立廟文附遺臣諸家錄) 저자 풍념조(馮念祖)
자료명(이칭) 조종암입묘문, 부유신제가록(朝宗巖立廟文, 附遺臣諸家錄) , 朝宗巖立廟文, 附遺臣諸家錄 저자(이칭) 풍념조(조선) 편(馮念祖(朝鮮) 編) , 馮念祖(朝鮮) 編
청구기호 K2-462 MF번호 MF35-187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叢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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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59(철종 10년)
· 청구기호 K2-462
· 마이크로필름 MF35-187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풍념조(馮念祖)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1.4 X 19.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9×15.0cm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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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59년(철종 10)  遺民의 후손 臨胊 馮念祖, 琅琊 鄭淑明 등이 朝宗巖에 廟堂을 건립하고 享田을 마련하기 위해 유민의 후손에게 돌린 通文 등 각종 전적을 모은 서책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朝宗巖立廟文’이고, 표제 아래에 ‘附遺臣諸家錄’이라 쓰여 있다. 四周雙邊, 半葉 10행, 上下向黑魚尾의 목판 印札空冊紙에 필사하였다.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본래 표지를 그대로 둔 채 개장하였으며, 六針眼이었던 본 도서를 五針眼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뒤표지 面紙의 “西紀一八五九(哲宗 10)己未 馮念祖編 馮榮燮寄贈”이라는 기록을 통해 明末 遺民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는 馮榮燮1859년馮念祖가 편찬한 본서를 기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서명에 해당되는 ‘朝宗’은 『書經』의 「禹貢」에 나오는 표현으로 諸侯가 天子에게 귀의한다는 뜻이다. 朝宗巖京畿道 加平郡 朝宗里 大報山 아래에 있는 바위로 명나라 毅宗의 어필인 ‘思無邪’, 선조의 어필 ‘萬折必東再造藩邦’, 효종의 批辭 ‘日暮途遠至痛在心’이 새겨져 있고, ‘朝宗巖’이라는 篆額이 있어 대명의리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유민의 후손들이 1831년(순조 31)조종암 아래에 ‘大統行廟’와 ‘九義行祠’라는 祭壇을 건립하고 명 태조명나라 九義士에게 매년 정월에 제사를 올렸다. 명나라 九義士는 반청인사였던 王美承, 馮三仕, 黃功, 鄭先甲, 楊福吉, 裵三生, 王文祥, 王鳳岡, 柳溪 등이다. 이후 재력이 고갈되자 廟閣의 건립과 享田 마련을 목적으로 유민의 후손들에게 통문을 돌려 助力을 구하는 과정에서 본서가 편찬되었다.
구성은 馮念祖1859년(철종 10) 1월에 지은 「敍朝宗巖立廟文」, 鄭淑이 지은 通文, 재원 마련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한 「節目凡例」, 王俶說이 지은 「立廟所發文跋」, 관련 직무를 담당한 직장을 제시한 「諸任」, 조선에 거주하는 유민에 대한 「遺臣諸家」, 유민이 조선으로 유입되는 과정을 적은 「再造藩邦誌遺民傳略抄」 등으로 되어 있다. 「절목범례」는 19항목으로 通文 발송의 배경, 任員數와 선발, 회의 운영 절차, 收錢有司 名數와 역할, 묘각 건립 절차, 비협조 유민의 후손에 대한 嚴懲, 수렴 한도액, 立廟所 使令 등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立廟所發文跋」은 존주론과 대명의리론을 강조하는 내용이며, 「諸任」은 구체적인 都有司·副有司·掌議·色掌·留財有司·收錢有司 등 임원의 성명을 제시하였다. 임원 가운데 수렴액을 거두는 收錢有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며, 京畿와 8道로 구분하였다. 「유신제가」는 조선에 거주하는 유신의 출신지, 관직, 성명 등 호적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다. 「再造藩邦誌遺民傳略抄」는 申炅의 『再造藩邦誌』에 수록된 「遺民傳」에서 유민 관련 사항을 초록하여 옮겨 적은 것이다.
특성 및 가치
명말·청초에 나라가 망하여 조선으로 넘어왔지만 중화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반청의식을 지속하고자 하였던 측면과 함께 현실적으로 제단의 운영에 어려웠던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이다. 또한 조종암과 관련하여 조선 후기 지식인이 가졌던 대명의리론과 존주론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고, 조선으로 유입되어 거주하던 유민의 분포와 후손들의 자아의식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집필자

김경록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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