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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시대만주도(前漢時代滿洲圖)

자료명 전한시대만주도(前漢時代滿洲圖) 저자 목기성정(木崎盛政)
자료명(이칭) 前漢時代滿洲圖: 저자(이칭) 木崎盛政(日本) 製圖
청구기호 K2-4619 MF번호 MF35-291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地圖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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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0]
· 청구기호 K2-4619
· 마이크로필름 MF35-291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목기성정(木崎盛政)(일본(日本)) 제도(製圖)

형태사항

· 크기(cm) 30.7 X 39.8
· 판본 신연활자판(新鉛活字版)
· 장정 접포장(摺鋪裝)
· 수량 1포(鋪)
· 판식 절(折) 20.4×18.0㎝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洋裝圖書分類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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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滿洲歷史地理』의 편찬 과정 중 제작된 것으로, 前漢時代 만주 지역의 당시 행정구역 경계와 주요 지명을 기재한 역사지도이다.
서지사항
 표지 장황은 황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으며, 종이로 된 제첨 위에 사주쌍변의 광곽을 그리고 ‘[滿洲歷代地/理附圖第二]前漢時代滿洲圖’를 필사하였다. 가로 1절, 세로 2절로 된 접포식 장정이다. 사주쌍변의 광곽에 컬러 인쇄된 지도이며, 사주쌍변에 위도와 경도를 검은색 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前漢時代滿洲圖’라는 지도명과 ‘朱字ハ古名ナリ’라는 주기가 인쇄되어 있다. 광곽의 바깥쪽 하단부에는 ‘木崎盛政 製圖’라는 제도자에 대한 기록과 ‘縮尺=四百萬分之一’이라는 축척이 우측에서 좌측의 순서로 인쇄되어 있다. 지도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과 ‘洋裝圖書分類’라는 인장이 날인되었다.
체제 및 내용
 19세기 말부터 일본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만주 지역이 본래 중원 왕조에서 독립된 지역이었음을 주장하는 자료를 수집하고 각종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후 만주의 역사와 지리를 독립적으로 다룬 일련의 결과물들을 내놓았는데, 그중 『滿洲歷史地理』와 함께 편찬된 附圖도 중요한 결과물이었다(『滿洲歷史地理』에 대한 내용은 K2-4604 『渤海時代滿洲圖』 참조).
 장서각 소장의 『前漢時代滿洲圖』는 1폭 1책으로 되어 있으며, 황색 책 표지 좌측에 ‘滿洲歷代地理附圖第二 前漢時代滿洲圖’라고 지도명이 있고, 지도 안쪽 좌측 상단 사각형 안에 지도명을 적고 그 아래 괄호에 ‘西紀前二○二年-西紀二五年’이라는 지도가 반영하는 시간적 범위를 표시하였다. 연도 아래 ‘붉은 글씨는 옛 지명이다’라는 주기가 적혀 있다. 부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으로 국경선을 표시하였는데 현재의 국경선에는 채색을 하지 않고, 한나라의 국경선만 녹색 채색을 굵게 더해 표시하였다. ·-·-·-·-·-·- 에 녹색을 얇게 칠해 군의 경계선을 표시하였다. 前燕시대의 국경과 경계선에는 녹색 굵은 실선을 더해 표시하였다. 지형은 옅은 갈색으로 농담을 조절해 고도를 표현하고 있다. 주기의 내용대로 붉은색으로 前燕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검은색으로 지도가 제작될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바다와 호수는 녹색으로 채색하고, 하천은 푸른색 실선으로 표현하였다. 해안선의 변화가 있는 지역은 점선으로 현재의 해안선을 따로 표현하였다.
 지도의 도곽선은 이중으로 되어 있다. 외부 도곽선은 4겹의 실선으로 되어 있고, 도곽선 사이에 경도와 위도를 2도 간격으로 기입하였다. 지도의 하단 중앙에 ‘縮尺=四百萬分之一’로 문자식 축척을 기재하고, 그 좌측에는 중국척(淸里), 우측에는 미터법(吉米=km)으로 도표식 축척을 표시하였다. 지도에 수록된 범위는 북위 38도에서 48도, 동경 116도에서 134도 사이이다. 이는 남으로 중국 산동반도한반도충청도 이북, 북으로 몽골 일부, 중국의 동북 지방, 흑룡강 이북의 러시아, 서로 북경 주변, 동으로 연해주 일부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기원전 202년漢 高祖 劉邦이 제위에 오른 해이고, 서기 25년後漢 光武帝長安에서 洛陽으로 천도한 해이다. 劉邦이 세운 한나라광무제가 세운 한나라를 구분하기 위해 劉邦이 세운 한나라를 ‘前漢’, 광무제가 세운 한나라를 ‘後漢’이라고 한다. 前漢의 수도는 長安(西安)에 있었고, 光武帝한나라는 수도가 그보다 동쪽인 洛陽에 있었기 때문에 前漢을 ‘西漢’, 後漢을 ‘東漢’이라고 하기도 한다. 전한의 전성기때 동북 지역의 영토는 遼西遼東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지도에 漢武帝가 설치하였다는 漢四郡 중 玄菟郡, 樂浪郡만 표시되었다. 眞番郡臨屯郡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다. 낙랑군의 표기를 평안도황해도에 걸치도록 하고 한반도 안에서 낙랑군의 경계를 표시하지 않아 마치 함경도를 제외한 한반도의 대부분이 마치 낙랑군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한시대에 공존한 고조선이나 남쪽의 삼한도 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나라의 국경 북쪽에 挹婁, 夫餘, 鮮卑, 烏桓 등 북방 민족의 명칭을 표시하였다.
 前漢시대의 국경선은 굵은 녹색 실선으로 표시하였다. 국경은 만리장성 너머 지금의 承德平泉朝陽廣寧 북쪽을 연결하여 遼河를 따라 북상한다. 이후 開原에서 내륙으로 이어져 평안북도 북쪽에서 평안도함경도의 경계선을 따라 남하하다가 함흥 북쪽에서 동조선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도에 한나라의 강역으로 표시된 군은 樂浪郡, 玄菟郡, 遼東郡, 遼西郡, 右北平郡, 漁陽郡, 渤海郡이다.
 樂浪郡의 영역은 지금의 압록강을 경계로 朔州에서 함흥을 연결하는 선의 이남 지역으로 하고 있는데, 주요 지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玄菟郡은 지금의 無順安東을 연결하는 선의 동쪽 지역에 그려져 있다. 班固의 『漢書』 地理志에 현도군高句麗, 上殷台, 西蓋馬 등 세 개의 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도에는 고구려뿐이고 상은태서개마는 누락되어 있다. 遼東郡大凌河 동쪽에서 시작하여 玄菟郡, 樂浪郡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漢書』 地理志에 遼東郡은 모두 18개의 현을 가지고 있는데, 지도에 11개의 현이 확정된 위치에 표시되어 있고 險瀆, 居就 安市, 武次, , 등 6개의 현은 의문부호가 붙어 있어 지도에 비정한 위치가 불확실함을 표시하고 있다. 番汗은 누락되었다.
 遼西郡朝陽에서 長城의 靑山口를 연결하는 선에서 장성을 따라 喜峰口에 이르러 남쪽으로 樂亭을 연결하는 지역의 동쪽에 해당된다. 『한서』 지리지에 요서군은 14개의 현을 가지고 있는데, 지도에 11개 현의 명칭이 표시되었다.
 右北平郡承德에서 薊運河를 연결하는 선의 동쪽에 해당한다. 『한서』지리지에 모두 16개의 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도에 12개 현이 표기되었다. 漁陽郡渤海郡은 경계 표시를 표시하지 않았다. 어양군은 현재 북경 지역에, 발해군은 그 남쪽에 표시하였다.
 20세기 초 제작 당시의 조선, 러시아, 중국의 국경선을 지도에 흑색으로 표시하였다. 조선의 국경선은 압록강장백산두만강으로 하고, 이남에 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를 표시하였다. 두만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접한다. 중국에는 흑룡강성, 길림성, 성경성, 직예성, 산동성 등 주요 지명을 기재하였다.
 전한시대 교통로 등은 표시하지 않았다.
특성 및 가치
 중국 전한시대 당시 만주 지방의 역사지리와 지명을 연구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지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편찬된 지도이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20세기 초 일본만주를 침략하기 전후의 중국 동북 지역 지명과 지역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譚其驤, 『中國歷史地圖集』, 中國地圖出版社, 1982.
王育民, 『中國歷史地理槪論』, 人民敎育出版社, 1988.
中國歷史大辭典·歷史地理』, 上海辭書出版社, 1997.

집필자

이명희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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