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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강도(烏蘇里江圖)

자료명 오소리강도(烏蘇里江圖) 저자 작자미상(作者未詳)
자료명(이칭) 烏蘇里江圖(中國) 저자(이칭) [作者未詳]
청구기호 K2-4613 MF번호 MF35-291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地圖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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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사년미상(寫年未詳)
· 청구기호 K2-4613
· 마이크로필름 MF35-291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작자미상(作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67.3 X 61.1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접포장(摺鋪裝)
· 수량 1포(鋪)
· 판식 절(折) 69.7×26.9㎝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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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18년(康熙 57)에 제작한 28폭의 『皇輿全覽圖』를 저본으로 채색·필사한 러시아의 경계 지도이다.
서지사항
 표지 장황은 청색 종이에 연능화문이 있다. 종이로 된 제첨 위에 ‘烏蘇里江圖’를 필사하였다. 가로 2절, 세로 3절로 된 접포식 장정이다. 필사본 지도로, 사주단변 朱絲欄에 동서남북의 위도와 경도를 붉은색 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지도의 좌측 상단에 ‘烏蘇里江圖’라는 지도명이 필사되었다. 지도에 산천과 강계 및 산림 등이 구별하여 채색되어 식별이 용이하다. 지도 일부에 蟲害의 흔적이 있어 저지를 배접하여 보수하였다. 지도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장서각 소장의 다른 같은 판본의 『皇輿全覽圖』 계열 지도들과 마찬가지로 1폭 1책으로 되어 있으며, 푸른색 표지 왼쪽 상단에 지도명이 쓰여 있다.
 지도의 지리적 범위는 북위 43도에서 48도, 경도는 북경을 기준으로 동 17도에서 동 24도 사이이다. 해당 지역은 북경조약(1860년)이 체결되기 전에는 청나라 吉林將軍의 관할에 속했지만 조약 체결 후에는 중국러시아의 경계가 되었다. 다른 변강 지역처럼 행정단위의 표시가 거의 없으며 몇몇 城의 이름만 붉은색 원형 부호를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침엽수 형태의 나무 그림으로 산림자원이 풍부한 지역임을 표현하고 있다. 지역의 특성상 일반 행정단위 지명보다 하천과 산 등 자연 지명이 많이 기재되어 있다.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각성지도는 그 구성과 내용이 1718년에 완성된 『皇輿全覽圖』와 일치하고 있다. 강희제1689년(강희 28)러시아와 네르친스크조약을 통해 동북 지역의 국경선을 정했는데, 이때 프랑스 선교사 張誠(J.-F. Gerbillon)이 통역을 맡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강희제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한편 강희제는 이를 계기로 정확한 지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새로운 지도 제작을 위한 조건이 갖추어지자 강희제유럽에서 온 여러 선교사들과 관원들로 구성된 지도제작단을 중국 전역으로 파견하여 경위도를 실측하도록 하였다. 이 작업은 1708년(康熙 47)에 시작되어 약 10년에 걸쳐 경위도 측량과 자료 수집을 끝내고 1718년에 각성지도를 비롯해 전국지도가 완성되었다. 이 지도는 상송(N.Sanson)의 정현곡선 투영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북경을 경선 0˚의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축척은 1:1,400,000 정도이다.
 『皇輿全覽圖』의 지리적 범위는 동으로 黑龍江 入口, 서로는 新疆 哈密, 남으로는 海南島, 북으로는 바이칼호수까지 아우르고 있다. 新疆 哈密 서쪽은 당시 回葛爾部가 아직 평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측량을 진행할 수 없었고, 티벳 지역은 라마를 파견하여 旅程 거리만을 측량하는 정도였다. 따라서 중국 내성에 비해 변강 지역 지도는 정확성이나 상세함이 떨어지는 편이다.
 강희 연간의 『皇輿全覽圖』는 최초로 전국적인 경위도 측량을 통해 제작된 중국 전도이지만 오류도 범하고 있다. 예를 들어 廣東省雷州半島 북부에 있는 서로 통하지 않는 하천 둘을 마치 하나의 하천처럼 표시하여 반도를 섬으로 표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후 많은 지도들이 이 오류를 그대로 따랐다.
 강희제 때 완성된 『皇輿全覽圖』는 이후 여러 차례의 각인과 모사를 거쳤기 때문에 현전하는 판본이 비교적 많은데 유형별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718년(강희 57)의 목판본으로, 28폭으로 구성되었다. 關內 15, 關外 5, 蒙古 3, 河源 1, 江源 1, 雅魯藏布 1, 哈密以東 1, 高麗 1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몽골티벳 서부는 없다. 關內는 전통적인 한족의 지역으로 명대의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지명은 모두 한문을 사용하여 표기하였다.
 두 번째 판본은 1719년의 동판 인쇄본이다. 長城 밖의 지명은 만주어를 사용하여 표기하였고, 장성 내의 것은 한문으로 표기하였다. 위도 5도를 1排로 하여 모두 8排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는 1721년에 제작된 木版分幅本인데, 32폭을 합해 1책으로 한 것이다. 폭마다 도엽명이 있으며 지명과 주기는 모두 한문을 사용하여 표기하였다.
 현재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각성지도들은, 28폭으로 구성된 『皇輿全覽圖』의 첫 번째 판본을 母本으로 하고 있다. 북경대학교도서관에 28폭으로 구성된 목판본 『皇輿全覽圖』가 소장되어 있는데, 이 지도는 黑龍江口, 黑龍江中, 黑龍江源, 河套, 河源, 色楞厄河, 哈蜜, 盛京, 熱河, 直隸, 河南, 陝西, 山西, 山東, 江南, 浙江, 江西, 福建, 湖廣, 廣西, 廣東, 貴州, 四川, 雲南, 雅礱江, 金沙江瀾凔黑水, 朝鮮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서각본의 구성이 완벽하지 않고 일부 지도명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두 소장처의 지도는 내용과 표현 방법, 부호의 사용 등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이 지도들은 청 초기의 지방행정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청 초기는 기본적으로 명대의 지방행정제도를 그대로 이어받다가 順治帝 때에 南直隸江南省으로 바꾸었을 뿐 명대의 布政司使제도를 그대로 연용하였다. 康熙帝 이후 行省의 명칭을 회복하고, 北直隸를 포함하여 河南, 陝西, 山西, 山東, 江南, 浙江, 江西, 福建, 湖廣, 廣西, 廣東, 貴州, 四川, 雲南의 15개 성으로 나누었다. 그 후 江南江蘇安徽로, 陝西陝西甘肅으로, 湖廣湖南湖北으로 다시 나뉘었다. 장서각의 각성지도들은 江南, 陝西, 湖廣이 각각 2개의 성으로 나뉘기 전의 행정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장서각본 각성지도는 1폭의 지도가 1책을 이루고 있으며, 모두 푸른색 표지에 해당 성의 이름과 각 성에 속한 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각 지도는 1책의 접포식 채색 지도이고, 각각의 지도에 ‘李王家圖書之章’이라는 인장이 있고 지도 상단에 지도명이 표기되었다.
 현재 장서각에는 28폭의 지도 중 14개 지역의 지도가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 소장본 각성지도들과 지역이 겹치지 않는 『陝西全圖』가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외 다른 지역의 지도는 모두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皇輿全覽圖』는 강희 이후 의 판도가 점차 넓어짐에 따라 擁正乾隆 연간에도 제작되었다. 전반기에 만들어진 여러 판본의 『皇輿全覽圖』는 대체적으로 궁중 깊숙이 보관되어 민간에 유통되지 않았다. 그 후 19세기 童方立李兆洛 등의 학자가 궁중에 보관되어 있던 『皇輿全覽圖』를 참고하여 다양한 지도와 지도책을 만들면서 『皇輿全覽圖』의 내용이 민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장서각 소장의 중국 각성지도 역시 이런 종류의 지도가 조선으로 유입되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청 초기의 지도를 거의 그대로 모사한 지도로, 청나라 초기 강역과 지방행정제도, 자연지리 등과 청대 지도 제작에 관해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皇輿全覽圖』(북경대학교 소장본)
이명희, 「청 강희 시기(1662~1722) 전국지도 제작에 대한 고찰」, 『문화역사지리』 23(3), 2011.KCI
李孝聰, 『歐洲收藏部分中文古地圖敍錄』, 國際文化出版公司, 1996.
崔恒昇, 『中國古今地理通名滙釋』, 黃山書事. 2003.

집필자

이명희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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