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명대요동변장도(明代遼東邊牆圖)

자료명 명대요동변장도(明代遼東邊牆圖) 저자 목기성정(木崎盛政)
자료명(이칭) 明代遼東邊牆圖: 저자(이칭) 木崎盛政(日本)製圖
청구기호 K2-4603 MF번호 MF35-291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地圖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0]
· 청구기호 K2-4603
· 마이크로필름 MF35-291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목기성정(木崎盛政)(일본(日本)) 제도(製圖)

형태사항

· 크기(cm) 50.5 X 62.1
· 판본 신연활자판(新鉛活字版)
· 장정 접포장(摺鋪裝)
· 수량 1포(鋪)
· 판식 절(折) 18.6×18.1㎝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洋裝圖書分類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滿洲歷史地理』의 편찬 과정 중 제작된 것으로, 명대 요동 지역에 설치했던 邊墻의 노선과 주변 지역의 인문지리와 자연지리를 표현한 역사지도이다.
서지사항
 표지 장황은 황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으며, 흰 종이 제첨 위에 四周雙邊의 광곽을 그리고 ‘[滿洲歷代地/理附圖第十六]明代遼東邊牆圖[附邊墻創/設以前之/滿洲]’를 필사하였다. 가로 2절, 세로 3절로 된 접포식 장정이다. 사주쌍변의 광곽에 컬러 인쇄된 지도이며, 위도와 경도를 검은색 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明代/遼東邊牆圖/朱字ハ古名ナリ’의 지도명이 사주쌍변의 광곽 안에 인쇄되어 있다. 지도 오른쪽 하단부에는 지도명이 ‘邊墻創設以前之遼東’인 지도가 인쇄되어 있다. 광곽의 하단부에 ‘木崎盛政 製圖’, ‘淸里’ 축척, ‘縮尺=壹百萬分一之尺’, ‘吉米’ 축척이 오른쪽에서 왼쪽의 순서로 인쇄되어 있다. 지도에 ‘李王家圖書之章’과 ‘洋裝圖書分類’의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9세기 말 일본이 편찬한 명대 遼東邊墻에 대한 역사지도이다. 19세기 말부터 일본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만주 지역이 본래 중원 왕조에서 독립된 지역이었음을 주장하는 자료를 수집하고 각종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후 만주의 역사와 지리를 독립적으로 다룬 일련의 결과물들을 내놓았는데, 그중 『滿洲歷史地理』와 함께 편찬된 附圖도 중요한 결과물이었다(『滿洲歷史地理』에 대한 내용은 K2-4604 『渤海時代滿洲圖』 참조).
 장서각 소장의 『明代遼東邊墻圖』는 1폭 1책으로 되어 있으며, 황색 책 표지 좌측에 ‘滿洲歷代地理附圖第十六 明代遼東邊墻圖’라고 지도명이, 지도 안쪽 좌측 상단 사각형 안에 지도명이 있고, 그 아래에 ‘붉은 글씨는 옛 지명이다’라는 주기가 적혀 있다. 부호에 대한 다른 설명은 없지만, ++++++으로 국경을 표시했는데 붉은색은 명대의 국경을, 검은색은 지도를 제작할 당시의 국경선을 나타냈다.
 지도는 경위도가 숫자로 표시되어 있고, 지형은 연한 색으로 채색한 羽毛式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기의 내용대로 붉은색으로 명대의 역사적 상황을, 검은색으로 지도 제작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바다와 호수는 녹색으로 채색하고, 하천은 푸른색 실선으로 표현하였다. 해안선의 변화가 있는 지역은 점선으로 현재의 해안선을 따로 표현하였다.
 이 지도에 수록된 지역은 북위 39도에서 43도, 동경 119도에서 127도까지이다. 지도 하단에 축척을 기입했다. 좌측 하단에 ‘縮尺=壹百萬分之一’로 문자식 축척을 기재하고, 가운데는 중국척으로, 우측에는 미터법(吉米=km)으로 도표식 축척을 표시했다. 지도 우측 아래 부분에 편찬자를 ‘木崎盛政’이라고 기입하였다.
 지도의 주제인 ‘遼東邊墻’은 山海關鴨綠江 사이 長城의 별칭이다. 長城을 따라 설치한 九邊 중의 하나인 遼東鎭에서 이 구간의 방비를 맡았다. 遼東邊墻은 지리적 위치와 건축 연대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요하 유역의 변장으로, 세 부분 중 건축 연대가 가장 빠른 곳이다. 명나라 永樂 연간(1403~1424)에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형태가 안쪽으로 V자형을 띠고 있다. 廣寧鎭에서 시작하여 開原에 이른다. 두 번째 구간은 遼西 변장으로 명나라 正統 연간(1436~1449)에 쌓기 시작하였다. 山海關에서 廣寧鎭에 이르는 구간이다. 세 번째는 명나라 成化부터 萬曆 연간(1465~1615)에 이루어진 요동 동부 구간으로 開原에서 丹東 압록강변까지의 구간이다.
 遼東邊墻은 원래 명대 兀良哈(몽고)과 女眞의 각 부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시설이다. 장성을 따라 堡를 만들고 堡마다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명조 후기에 여진족과 전쟁을 치름에 따라 요동 방비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었고, 조정에서 중병을 파견하여 遼東邊墻을 방어했으나 결국 청군이 요동을 넘어 山海關으로 진입하였다. 이후 이 부분의 장성은 훼손되어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山海關嘉峪關 사이의 長城만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비록 명대요동장성을 주제로 한 지도이지만, 의 柳條邊 또한 지도에 그려넣고 있다. 柳條邊은 老邊과 新邊으로 나눌 수 있다. 청나라 順治 연간에 長城의 동쪽 끝에서 동북쪽으로 연결되는 柳條邊을 부분적으로 쌓기 시작하여 康熙 연간에 완성하였다. 남으로 현재 遼寧省 鳳城 남쪽에서 시작하여 동북으로 新賓을 지나며 동쪽으로 꺾여 서북으로 開原의 북쪽에 이르는데, 여기서 다시 서남쪽으로 이어져 山海關 북쪽으로 長城과 연결된다. 이 부분을 老邊이라고 한다. 老邊 외에 開原에서 동북쪽으로 길림 북쪽에 이르는 柳條邊을 新邊이라고 하는데, 지도의 범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신변의 일부만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老邊은 開原 동쪽 盛京兵部의 관할에 속하고, 邊墻 동쪽은 울타리를 쌓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였다. 처음 柳條邊에 설치한 邊門은 21개소였는데, 그 후 한 개가 줄어 20개소가 되었다. 지도에 邊門의 위치와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본 지도는 명대 遼東邊墻과 청대 柳條邊의 주요 시설뿐 아니라 검은색 실선으로 이 지역의 교통로와 주요 도시 등을 표시하였다. 지도의 오른쪽 하단에 ‘邊墻建設以前之遼東’ 지도가 있다.
특성 및 가치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지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편찬된 지도이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20세기 초 일본만주를 침략하기 전후의 중국 동북 지역 인문지리와 자연지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일본이 이 지역에 건설한 철도를 비롯해 기존에 없었던 교통로와 새로운 교통로를 따라 발달한 도시를 연구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참고문헌

譚其驤, 『中國歷史地圖集』, 中國地圖出版社, 1982.
王育民, 『中國歷史地理槪論』, 人民敎育出版社, 1988.
中國歷史大辭典·歷史地理』, 上海辭書出版社, 1997.

집필자

이명희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