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광서전도(廣西全圖)

자료명 광서전도(廣西全圖) 저자 작자미상(作者未詳)
자료명(이칭) 廣西全圖: 저자(이칭) [作者未詳]
청구기호 K2-4599 MF번호 MF35-291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地圖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사년미상(寫年未詳)
· 청구기호 K2-4599
· 마이크로필름 MF35-291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작자미상(作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56.8 X 78.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접포장(摺鋪裝)
· 수량 1포(鋪)
· 판식 절(折) 40.0×27.0㎝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718년(康熙 57)에 제작한 28폭의 『皇輿全覽圖』를 저본으로 채색·필사한 광서성 지도이다.
서지사항
 표지 장황은 청색 종이에 연능화문이 있다. 흰 종이 제첨 위에 ‘廣西全圖’를 필사하였다. 표지 우측 상단에 편목을 ‘桂林府’ 등의 지명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 가로 2절, 세로 3절로 된 접포식 장정이다. 필사본 지도로, 四周單邊 朱絲欄에 동서남북의 위도와 경도를 붉은색 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지도에 ‘廣西全圖’가 필사되어 있다. 초록색, 파란색, 붉은색, 검은색 등을 사용한 채색본 지도이다. 지도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표지에 桂林府, 平樂府, 慶遠府, 泗城土府, 梧州府, 柳州府, 那地土府, 潯州府, 思恩府, 鎭安府, 南寧府, 太平府, 思明土府 등 13개 부가 표기되어 있다. 그중 ‘洒城土府’의 洒의 오른편에 한글로 ‘선’이라고 음을 적어놓았다. 지도 안의 太平府에는 지명과 부호 사이에 성곽을 그려넣고 옅은 푸른색을 칠했다.
 1폭 1책으로 구성되었다. 장서각 소장의 다른 1718년 제작된 『皇輿全覽圖』 계통 각성지도들과 마찬가지로, 1718년 원도의 광서성 지역 지도에 채색을 더해 모사한 것이다. 채색을 더했다는 것 말고는 지도의 내용이나 부호의 사용, 다른 표현 방법 등이 원도와 모두 일치한다.
 지도의 지리적 범위는 북위 22도에서 26도, 경도는 북경을 기준으로 서 11도에서 서 5도까지이다. 지도의 좌측 상단에 ‘廣西全圖’라는 지도명이 있고, 상단 오른쪽 여백에 ‘李王家圖書之章’의 직인이 있다.
 붉은색 굵은 도곽선이 있으며 경위선도 붉은색으로 아주 가늘게 표시하고 있다. 도곽선 외곽에 한자로 경위도를 기입해놓았고, 네 면의 중앙에 한자로 東, 西, 南, 北을 적어 방위를 표시하였다. 경도는 북경을 본초자오선으로 삼아 좌우로 ‘東一度, 西一度’로 표기하였다. 주위 다른 성과의 경계는 검은 점선으로 표시하였다. 지도의 부호는 기호식과 회화식이 모두 사용되고 있다. 일반 행정단위는 각각 붉은색 사각형, 마름모꼴, 원으로 나누어 표시하고 있다. 산과 하천, 호소 등은 회화식으로 표현하였으며, 옆에 해당 지명을 함께 표기하였다. 산은 초록색을 산 아래, 푸른색을 산 정상 부분으로 나누어 표현하였고, 산맥의 경우에도 산을 이어지지 않게 독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천은 검은색 실선으로 강의 흐름을 표시하고, 옅은 푸른색으로 물 색깔을 표현하였다. 사각형으로 부·주·현을 표시하는데, 행정등급의 고하와 부호 크기는 관련이 없다. 원은 주로 작은 행정단위나 주요 지형지물을 표시하였다.
 표지에 적혀 있는 여러 소속 府 중에서 土府는 土司制度에서 나온 것이다. 土司란 , , 시기에 서북과 서남의 소수민족 지역에서 시행했던 제도이다.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는 대신, 해당 지역 소수민족의 수령으로 하여금 그 관직을 세습하여 지역을 다스리게 하는 지방행정제도이다. 이는 중앙의 영향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소수민족은 최대한 자치를 보장받고, 중앙정부는 이들이 자신들의 제도권 안에 있다는 체면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 제도는 원대에 시작되었는데, 명대에 이르러 등급에 따라 宣慰使·宣撫·按撫·安慰招討·長官 등은 무직으로 삼아 병부에 예속시키고, 土知府·土知州·土知縣 등은 문직으로 삼아 이부에 예속시켰다. 이들 土司는 중앙정부에 대해 일정한 공헌과 징발 외에는 간섭을 받지 않고 자치권을 누리며 그들 전통적인 방식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명청 양대 모두 改土歸流 정책을 시행하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토사를 대체하였으나, 국민당 통치 시기에도 부분적으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토사제도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1949년 이후의 일이다.
 『廣西全圖』에서는 광서성 전역에서 土州와 土縣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서남부에 土州와 土縣이 집중되어 있다. 이로써 강희 말년까지 조정이 廣西省 전역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도의 太平府 서남쪽, 지도의 가장 좌측 아래쪽 廣西省 경계 바깥쪽 交阯界 부근에 ‘銅柱’를 그려 표시했는데, 이는 後漢 光武帝馬援이 교지를 평정한 후 이 지역에 세워 후한 최남방의 경계로 삼은 銅柱이다.
특성 및 가치
 청 초기의 지도를 거의 그대로 모사한 지도로, 청나라 초기 廣西省의 인문·자연지리 등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특히 청대 초기 광서 지역에서 운영했던 토사제도의 연구를 위한 유용한 자료이다. 또한 청대 지도 제작에 관해 연구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皇輿全覽圖』(북경대학교 소장본)
李孝聰, 『歐洲收藏部分中文古地圖敍錄』, 國際文化出版公司, 1996.
崔恒昇, 『中國古今地理通名滙釋』, 黃山書事. 2003.

집필자

이명희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