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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진전도(龍津鎭全圖)

자료명 용진진전도(龍津鎭全圖) 저자 무위소(武衛所) 편(編)
자료명(이칭) 龍津鎭全圖 저자(이칭) 武衛所(朝鮮) 編
청구기호 K2-4569 MF번호 MF35-4085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地圖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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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사년미상(寫年未詳)
· 청구기호 K2-4569
· 마이크로필름 MF35-408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무위소(武衛所)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95.5 X 74.2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접포장(摺鋪裝)
· 수량 1포(鋪)
· 판식 절(折) 24.0×18.6㎝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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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세기 경기도 양근현에 있던 용진진 일대의 지형과 관사의 평면 배치를 그린 지도이다.
서지사항
 본문 지도에 ‘龍津鎭全圖’로 되어 있고, 표지서명은 ‘武衛所 龍津鎭舍基址圖形 楊根西中面 石潭里龍津’이다. 표지 장황은 민무늬 파란색 종이를 사용하였고, 표지서명은 흰색 제첨을 붙여 사용하였다. 전지 크기의 회화식 지도를 가로 3절, 세로 3절의 접포식으로 접어놓았다. 본문 지도는 중앙에 官舍를 설계도식으로 그렸고, 주변에 강과 산맥은 묽게 채색하였다. 지질은 매우 두터운 저지를 사용하였는데, 앞면은 매끄럽고 뒷면은 조금 거칠다.
체제 및 내용
 1첩 16절의 형태로서 표제에 ‘武衛所 龍津鎭舍基址圖形’이라 쓰여 있으며, 하단에 ‘楊根 西中面 石潭里 龍津’이라 하여 당시 행정구역의 위치를 표시하였다. 용진진은 현재 양평군남한강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 일대에 위치한다. 양근현1908년 지평현과 합쳐져 지금의 양평군이 되었다. 용진양수리 부근에 있던 나루터로, 한양을 방어하는 한강의 주요 요충지 중 하나였다. 표제의 무위소는 19세기 고종이 친정을 실시함에 따라 궁궐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1874년에 설치한 기구로서, 1881년 무위영으로 통합되기 이전까지 존속하였다.
 지도 중앙에 용진진 관사를 배치하고 북동쪽에 乾支山, 북서쪽에 雲吉山 등의 산지를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하고 연녹색의 색채로 가채하였다. 이들 산지의 사이로 강원도 춘천으로부터 남쪽으로 흘러 들어오는 북한강의 유로와 함께 아래쪽에 남한강의 물줄기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두 강을 잇는 지류가 白龍沼 등 3개의 호수와 함께 그려져 있다. 이와 관련된 양근현1879년(고종 16) 기록에서 “기묘년에 물이 넘쳐 새로운 물길을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있어 홍수로 이들 샛강과 호소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고종실록』(고종 16년 7월 12일)의 양근현에 恤田을 베풀었다는 기록을 볼 때 당시의 홍수 피해를 복구한 후 그린 지도로 추정된다.
 지도에 그려진 관사는 마치 지금의 측량 지도와 유사하게 평면 배치를 상세하게 그렸다. 관사의 총 규모는 74칸이며, 공간을 담으로 내사·외사로 구분하고 대문을 중심으로 건물의 기능을 좌우로 나누어 배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관사의 서쪽에 정자가 그려져 있다.
특성 및 가치
 19세기 군사 시설의 평면 배치도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점을 미루어볼 때 본 지도는 당시의 건축 구조와 명칭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김종혁, 「조선 전기 한강의 진도(津渡)」, 『서울학연구』 23, 2004.KCI
박정혜·이예성·양보경, 『조선왕실의 행사그림과 옛지도』, 민속원, 2005.

집필자

김기혁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