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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일기(東遊日記)

자료명 동유일기(東遊日記) 저자 송주상(宋周相)
자료명(이칭) 동유일기(同遊日記) 저자(이칭) , [宋周相(朝鮮) 著]
청구기호 K2-4511 MF번호 MF35-715
유형분류 고서/일기 주제분류 개인/생활/일기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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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49(영조 25년)
· 청구기호 K2-4511
· 마이크로필름 MF35-71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송주상(宋周相) 저(著)

형태사항

· 크기(cm) 30.2 X 17.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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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49년(영조 25)에 학자 宋周相이 약 40일간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직접 쓴 기행 기록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는 ‘東遊日錄’, 권수제는 ‘東遊日記’이다. 표지가 두 개인데, 본 표지는 황색, 재장 표지는 미색으로 線裝本이다. 두 표지 모두 좌측 상단에 표제가 기재되어 있으며, 재장된 뒤표지 이면에 ‘西紀一九七一年三月 / 藏書閣再裝’이라는 글이 2행에 걸쳐 기재되어 있다. 본문의 필사에는 無郭, 無絲欄, 無版心의 楮紙를 사용하였다. 본문 중 붉은 먹이나 검은 먹으로 표시한 부분이 있다. 본문 가운데 잘못 기재한 부분을 잘라내고 뒤에 종이를 덧붙여 수정한 흔적이 있다. 내용상 빠진 부분은 본문 우측에 小字로 기재하여 삽입하였다. 필사 시기는 본문 중 ‘崇禎三己巳(1749)仲夏旣望壬戌潭谷散人書于原城之梨花堂’이라는 기록을 통해 1749년(영조 25)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저자가 직접 저술한 행서초체의 초고본으로서, 편집체제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淨書되지 않은 필사본으로 간간이 글자를 삭제하거나 수정한 곳이 있다. 목차가 따로 있지 않지만, 내용별로 시작되는 부분에 소제목이 드러나 있다. 본문의 문단 구분이 필요한 곳에 원호(○)를 사용하였고, 주석 형식의 보충 설명은 본문의 글자보다 작게 雙行으로 적었다.
 전체적인 순서를 살펴보면, 표지면에 ‘東遊日錄’이라는 서명이 있고, 다음 1면은 백두산부터 금강산에 이르기까지의 지형을 설명하는 글이고, 내용상 3번째 면은 여행을 하게 된 동기 등을 적은 서론 격의 글인데 형식이 본문과 엄격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제3면 후반부터 제54면까지가 본서의 핵심 내용으로서 여행을 날짜별로 서술하였는데 제4면 첫머리에 소제목 형식으로 ‘東遊日記’라고 적었다. 제55면부터 제86면까지는 「山海臺亭名勝別錄」이라 하여 여행하면서 거쳐온 名勝地들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제86면 마지막 행에 「拙吟」이라 하여 여행 중에 쓴 51수의 詩를 제105면까지 실었고, 제106면부터 제108면까지는 여행 도중에 본 식물을 기록한 「草木花卉」, 제108과 제109면 중간까지는 여행 중 먹은 음식 기록인 「節納食餌」, 제109면 중간부터 제111면까지는 출발 순서에 따른 지명과 그 거리를 기록한 「途里地名」, 마지막 제112면에는 발문 격의 여행 후기를 기록하였다.
 먼저 저자와 저술 시기를 살펴보면, 제86면 「山海臺亭名勝別錄」의 마지막 ‘崇禎三己巳仲夏旣望壬戌 潭谷散人書于原城之梨花堂’과 제105면 「拙吟」의 마지막 ‘崇禎三己巳維夏之下澣 過客跋’이라는 구절을 통해 곧 1749년(영조 25)강원도 원주에서 潭谷 宋周相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표지 다음 면에 백두산부터 금강산까지의 지세에 따른 방향과 지명을 기록하였는데, 백두산부터 分水嶺까지 530여 리, 그리고 분수령부터 금강산까지 300여 리라고 小字雙行으로 중간에 삽입해 놓았다.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기 위해 전체 지세를 참고용으로 기록한 듯하다. 다음은 이 유람의 동기를 밝히고 있는데, 저자 宋周相은 평소에 항상 멀리 여행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금강산 유람도 그 동안 세 차례 시도하였으나 매번 장애를 만나 도중에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봄에 친구인 春甫 金元行서울에서 만나 동쪽 유람[東遊]를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마침내 原城에서 4월 13일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東遊日記」의 본격적인 ‘日記’ 시작 전에 젊어서부터 山水를 좋아하여 名山大川을 두루 다녔지만 오직 楓岳[금강산]만은 거리가 멀고 여행 경비가 없어 실행하지 못하였음과 丁巳年(1737) 이래로 무산된 경과를 간단히 한번 더 서술하고, 원호(○)로 단락을 바꾸어 ‘日記’를 적고 있다. 기록은 4월 14일부터 시작하여 5월 22일로 끝을 맺는데, 각 날짜 앞에 원호를 치고 日干支를 小字로 적은 다음 반드시 처음에 날씨를 적고 끝에는 小字로 하루동안 간 거리를 기록하였다. 내용의 대개는 旅程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入山부터의 景觀과 그 배경 이야기를 매우 생동감 있게 서술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14일(신묘), 바람이 붊. 李喜晉를 만났다. 20여 리를 감. 15일(임진), 아침에 안개가 끼고 비가 내렸다가 저녁에 갬. 70여 리를 감. 16일(계사), 甥女가 남자애를 젖먹이는 모습을 보고 위안이 됨. 이종 아우를 弔喪함. 60여 리를 감.” 등이다. 4월 그믐에 入山하면서는 마부와 말을 돌려보내고, 이때부터는 肩輿로 간 거리와 徒步로 간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九龍淵, 隱仙臺, 毗盧峯 등을 지나면서 각기 次韻하였다고 하는데, 그 詩가 뒤의 「拙吟」에 수록되어 있는 51수의 시일 것이다.
 「山海臺亭名勝別錄」은 그 작성 동기에 대해 “우선 이번 여행에 거쳐온 곳을 차례대로 隨錄하는데, 나누어 주를 달아 적는 것은 허황된 이야기를 전파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른 旅路를 기록함으로써 괴이하게 보는 자로 하여금 상세히 알게 하려는 의도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 여로는 ‘洛山義湘臺-淸澗亭-懸鍾巖-永郞湖-海山亭-七峯島-三日浦-叢石亭-溫井 -九龍淵-鉢淵-佛頂臺-楡岾寺-隱仙臺-摩訶衍庵-毗盧峯-八潭萬瀑洞-普德窟-正陽寺-歇惺樓-天一臺’인데, 그 말미에 “名山大川은 천지의 精英이자 우주의 靈區인데, 대개 夷狄인 佛氏의 호칭이 쓰이는 것이 개탄스럽다.”라고 하고 있다. 「途里地名」에서는 40일간의 여정 거리를 “總計 往還 2,210여 리 가운데 肩輿로 다닌 것이 230여 리, 배를 타고 다닌 것이 30여 리, 徒步로 다닌 것이 170여 리이다.”라고 꼼꼼히 기록해놓고 있다. 끝으로 후기에서 李保重洪令[洪鳳祚]에게 여행 비용 등 편의를 제공해준 대해 감사하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문인의 금강산 여행 기록을 살펴볼 수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날짜별로 여행지의 날씨와 거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하고, 지나온 명승지의 배경 이야기와 시를 별편으로 구성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참고문헌

성봉현, 「동유일록」, 『장서각도서한국본해제-지리류 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집필자

백영빈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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