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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도(金城山城圖)

자료명 금성산성도(金城山城圖) 저자 화서미상(畵書未詳)
자료명(이칭) 金城山城圖 저자(이칭) [畵書未詳]
청구기호 K2-4506 MF번호 MF35-486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古蹟/山城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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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사년미상(寫年未詳)
· 청구기호 K2-4506
· 마이크로필름 MF35-486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유일본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화서미상(畵書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58.0 X 79.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접포장(摺鋪裝)
· 수량 1포(鋪)
· 판식 절(折) 29.2×20.0㎝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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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시대 전라도 담양부에 소재하였던 금성산성을 그린 지도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는 ‘金城山城圖’이다. 황색 표지의 摺鋪裝으로, 벌집과 같은 문양이 있다. 표지의 좌측에 표제가 기재되어 있다. 지도를 펼치면 한 장으로 우측 상단에 ‘金城山城圖’라는 글이, 좌측 상단에 2 행에 걸쳐 ‘內外合周回五千五百五十步 / 內外雉堞合一千八百十八堞’이라는 글이 기재되어 있다. 지도 우측 상단 ‘金城山城圖’라는 제목 아래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금성산성은 지금 전라남도 담양군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성산(603m) 일대에 축조되어 있었으며, 자연 지형을 이용한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이다. 조선시대 전라도 장성입암산성, 무주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알려진 곳이다. 산성 축조와 관련하여 『고려사절요』에 1380년(고려 우왕 6)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개축하면서 성 이름을 ‘金城’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처음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산성의 위치와 규모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인 1610년(광해군 2)부사 최동립이 개축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어, 이곳이 당시 군사 요충지였음을 잘 보여준다. 1990년 사적 제353호로 지정되었다.
 지도의 좌측 상단에 성곽 규모와 관련하여 외성과 내성의 둘레가 5,550보, 내외의 雉堞이 1,818첩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험준한 산세를 회화적으로 잘 묘사하였다. 산성 전체를 부감법으로 묘사하면서 사방 시점으로 그렸고, 지형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축조된 성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일부 산봉우리에 鐵馬峰, 松臺峰, 小僧峰 등의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내성과 외성을 비롯한 성곽의 성벽과 치성, 외남문, 내남문, 북문, 내동문 등의 문루를 비롯하여 장대, 관아 건물의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외남문의 경우 계곡 안쪽에 축조된 모습과 내남문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내성 안에는 객관을 비롯한 여러 관아 건물이 실경으로 그려져 있다. 성안의 ‘各邑庫’는 이곳을 관할하는 군현들의 창고이다. 외성에 그려진 저수지와 ‘閭里’는 이곳에 적지 않은 규모의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며, 이는 전쟁시 장기간의 대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특성 및 가치
 금성산성은 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담양부지도〉에서 부분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이 지도는 단독으로 그려진 유일본이다. 당시 성곽의 내부 구조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담양군지편찬위원회, 『담양군지』, 1980.
이해섭 편저, 『금성산성』, 담양향토문화연구회, 2000.
전남대학교 박물관·담양군, 『금성산성 지표조사보고』, 1989.

집필자

김기혁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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