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북도각릉전도형(北道各陵殿圖形)

자료명 북도각릉전도형(北道各陵殿圖形) 저자 화자미상(畵者未詳)
자료명(이칭) 北道各陵殿圖形 저자(이칭) [畵者未詳]
청구기호 K2-4428 MF번호 MF35-291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古蹟/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87(정조 11년)
· 청구기호 K2-4428
· 마이크로필름 MF35-2912
· 기록시기 1787年(正祖 11) 以前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화자미상(畵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56.8 X 33.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함경도 함흥·영흥·안변·문천 등에 소재한 太祖의 4대조 및 그 비의 각 陵과 璿源殿·慶興殿·咸興本宮·永興本宮·黑石里·讀書堂을 채색으로 그린 圖形의 영본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는 ‘北道各陵殿圖形’이다. 청록색 표지의 折帖本이다. 표지의 좌측 상단에 표제가, 우측 상단에 12행에 걸쳐 ‘德安陵 / 智陵 / 淑陵 / 義陵 / 純陵 / 定和陵 / 璿源殿 / 慶興殿 / 咸興本宮 / 永興本宮 / 黑石里 / 讀書堂’의 陵名과 殿名 등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 첫 장에 표지 우측 상단과 같은 기록이 있고, 우측 하단에 표제와 같은 내용의 띠지가 붙어 있다. 백지에 도형이 그려져 있는데, 채색되어 있으며 도형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원 모양으로 ‘坐’와 ‘向’이 간지로 기재되어 있다. 도형의 우측 상단에 능호와 위치, 안장된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도형의 테두리를 파란색 종이로 감싸놓았다. 표지 우측 상단의 기록 중 ‘정화릉’까지만 도형이 있으며, 나머지 殿, 宮, 里, 堂의 도형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체제 및 내용
 표지에 북도의 각 능과 璿源殿·慶興殿·咸興本宮·永興本宮·흑석리·독서당을 차례로 묵서한 것으로 보아 원래는 총 12폭으로 제작하였으나, 선원전 이후부터 6폭이 누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2폭을 모두 갖춘 규장각 소장 『北道陵殿圖形』(奎10698), 문화재청 소장 『北道各陵殿圖形』과 비교할 수 있다. 규장각 소장본은 제11폭 흑석리의 도설에서 “흑석리태조가 탄생한 옛 고을로 ‘當宁 乙亥年’에 영흥 준원전의 동쪽 220여 보 거리에 碑를 세웠다(太祖誕生舊里洞 , 當宁乙亥竪碑, 在濬源殿, 東二百二十餘步)”고 하는 내용이 있어 1755년 영조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문화재청 소장 『북도각릉전도형』은 화풍과 채색이 규장각 소장본보다 늦은 시기의 양식을 반영하고, 장서각 소장본과는 도면 위의 도설이 모두 일치하여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문화재청 소장본은 1755년 흑석리영조가 어제비를 세운 것을 계승하여 1787년(정조 11) 11월에 태종 탄강 7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정조경흥전에 어제비를 세웠으나 제8폭 〈경흥전〉 화면에 나타나지 않고, 1797년에 독서당과 치마대 옛터에 각각 세운 정조어제 기적비 역시 도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적어도 1787년 이전 상황을 반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장서각 소장 『북도각릉전도형』 12폭 중 남아 있는 6폭은 다음과 같다. 제1폭은 태조 이성계의 高祖父母인 穆祖 李安社(?~1274)의 德陵孝恭王后 李氏 安陵의 능 2좌와 주요 전각을 그린 것이다. 제2폭은 安邊府에 위치한 태조 이성계의 증조인 翼祖 李行里(1243~?)의 智陵을 그린 것이다. 제3폭은 文川郡에 위치한 태조 이성계의 증조모인 貞淑王后 崔氏淑陵을 그린 것이다. 제4폭은 咸興府 동쪽 20리 雲田社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조부인 度祖 李椿(?~1342)의 義陵을 그린 것이다. 제5폭은 咸興府 동쪽 37리 東溟社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조모인 敬順王后 朴氏純陵을 그린 것이다. 제6폭은 咸興府 歸州洞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부모인 桓祖 李子春(1315~1360)과 懿惠王后 崔氏定陵和陵을 그린 것이다.
특성 및 가치
 태조 이성계와 그 조상의 함경도 사적에 대한 정보를 망라한 사료로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현창하고 이후 왕실 능묘 조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지리적 여건과 事蹟의 산실로 인해 조선 왕조의 능묘에 대한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함경도 8릉 및 관련 사적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사료이다.

참고문헌

정은주, 「『北道陵殿誌』와 《北道(各)陵殿圖形》 연구」, 『한국문화』 67,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4.KCI

집필자

정은주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