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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편액서(仁政殿扁額書)

자료명 인정전편액서(仁政殿扁額書) 저자 서영보(徐榮輔)
자료명(이칭) 仁政殿扁額書 저자(이칭) [畵者未詳] , 미상|미상|서영보(徐榮輔)|미상|미상
청구기호 K2-4382 MF번호 MF35-4866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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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탁년미상(拓年未詳)
· 청구기호 K2-4382
· 마이크로필름 MF35-486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서영보(徐榮輔) 서(書)

형태사항

· 크기(cm) 85.6 X 107.0
· 판본 탁인본(拓印本)
· 장정 접포장(摺鋪裝)
· 수량 1포(鋪)
· 판식 절(折) 42.8×27.0㎝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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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昌德宮 仁政殿 건물에 걸린 ‘仁政殿’이라는 편액을 탁본한 것이다.
서지사항
 표제가 ‘仁政殿扁額書’로 서명은 표제를 따른다. 표지 장황은 감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는 것이고, 본문을 접포식으로 접은 후에 표지를 붙여 첩으로 만든 형태이다. 표제는 흰색 종이를 덧붙인 것이다. 본문은 편액을 만들기 위해 글씨 크기가 가로세로 94×80cm인 ‘仁政殿’이라는 대자 글씨를 한 자씩 써놓은 것이다. 각 장이 세로 3절 가로 1절로서, 접는 방식은 먼저 세로로 양옆을 접고 다시 가로로 접은 후에 책자처럼 접는 방식이다. 지질은 두텁고 품질이 좋은 厚紙를 사용하였다. 책수는 3장 1첩이다. 본문 첫 장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昌德宮 仁政殿 건물에 걸린 편액을 탁본한 것이다. ‘仁政殿’이라는 세 글자를 한 장씩 접어 이를 첩으로 만든 것으로, 그 외 다른 정보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언제, 누가 썼는지는 직접적으로 알 수가 없다. 다만 순조 때인 1804년에 화재로 소실된 인정전을 재건하면서 쓴 글씨를 탁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 궁궐은 북궐인 경복궁을 위시하여 동궐인 창덕궁, 창경궁, 서궐인 경희궁(경덕궁)과 나머지로 경운궁(덕수궁)이 있으니, 이를 조선시대 5대 궁궐이라 부른다. 궁궐에는 正殿과 便殿이 있는데, 정전은 왕의 즉위식과 신하들의 하례 및 외국 사신의 접견 등의 주요한 의식을 치르는 전각을 말한다. 인정전이 바로 창덕궁의 정전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重層 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창덕궁貞善坊에 위치하고 태종 5년(1405) 離宮으로 건립했다. 인정전은 조회를 받는 곳이고, 안문은 仁政, 중문은 進善, 바깥문은 敦化라 한다.”고 되어 있다.
 ‘인정’이라 이름 지은 의미에 대해서는 특별한 출전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儒學을 국시로 삼은 조선 왕조의 왕도정치 이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인정전에 대해 「仁政殿銘」을 지었는데, 그 중 “무엇으로 다스리는가? 仁으로써 정사를 펴네.(何以出治 發政以仁)”라는 구절이 있어 참고할 만하다.
 인정전1405년에 창건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중건된 후 여러 차례 중건과 수리를 거쳤다. 또 순조 3년(1803)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에 중건되었으며, 다시 헌종 8년(1842)에 전체적으로 수리하였다. 이때 중건하고 수리한 기록에 대한 전말은 규장각에 소장된 『仁政殿營建都監儀軌』(奎14334)와 『仁政殿重修儀軌』(奎14343)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書者에 대해서 『인정전영건도감의궤』에 懸板書寫官으로 徐榮輔(1759~1816)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李晩秀(1752~1820)가 지은 인정전 상량문도 서영보가 글씨를 썼다고 나온다. 다만 서영보가 쓴 금석문인 장서각 소장본 『洪忠平公取義碑文』(K2-4017), 『肅宗大王御製鏡浦臺』(K2-4371), 『博川聖蹟碑』(K2-5242) 등의 글씨와 비교해보면, 인정전 현판의 글씨는 특이하다. 위 비문들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서영보의 글씨는 구양순 서체를 기본으로 하므로 획마다 각이 지면서 반듯한 필획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 인정전의 글씨는 안진경의 서체와 비슷한데, 가로 획이 약간 아치형이며 삐침이 직선적이지 않고 약간 굴곡이 있다. 이로써 보자면 본 글씨가 서영보의 친필인지 의심이 들지만, 확실하다면 서영보의 서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인정전은 본래 국왕의 임시 거처소인 離宮으로 건립되었으나, 후에 여러 국왕들이 이곳을 더 많이 사용하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행사를 대부분 치렀다. 그러므로 인정전조선 왕궁에 있어 권위와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전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걸린 편액의 원본 크기를 탁본하였다는 측면에서 궁궐사와 서예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宮闕志
仁政殿營建都監儀軌
仁政殿重修儀軌
世宗實錄地理志
孔俊元, 『五宮과 都城』, 세계문예, 2009.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2004.
장서각소장 탁본자료해제 Ⅱ-帖裝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집필자

박경수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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