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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도(時敏堂圖)

자료명 시민당도(時敏堂圖)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時敏堂圖 저자(이칭) [畵者未詳]
청구기호 K2-4373 MF번호 MF35-1726, MF35-486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古蹟/宮·殿·樓·閣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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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670(현종 11년)
· 청구기호 K2-4373
· 마이크로필름 MF35-1726, MF35-486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41.0 X 31.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인장 春坊藏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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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670년(현종 11) 世子侍講院의 주관으로 時敏堂에서 치른 왕세자(후의 숙종, 李焞 1661~1720)의 冠禮를 순서대로 작성한 文班次圖이다.
서지사항
 표제가 ‘時敏堂圖’로서 서명은 표제를 따른다. 표지 장황은 황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는 것이며, 표제는 하얀색 비단에 붓으로 써서 붙여놓았다. 본문 첫 장의 중앙 상단에 ‘圖’ 자만 적힌 띠지가 붙어 있다. 앞뒤의 표지는 두께가 3mm 정도 되는 나무판과 같은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으며, 장정은 절첩본 형태이다. 본문은 가장자리에 주황색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놓은 형태이다. 총 장수는 10절인데, 그림이 17면 있고, 마지막 3장은 관직과 인명을 적어놓았다. 지질은 도침이 잘된 壯紙를 사용하였다. 첫째 면 그림 우측 위에 ‘春坊藏’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관례는 왕세자의 10세를 전후하여 치르는 성인식이자 字를 지어주는 의례로, 국가 오례 중 가례에 해당한다. 현종의 후사로 종묘를 받들 왕세자 이순의 관례는 그의 나이 10세인 1670년 3월 9일에 치러졌다. 관례가 치러진 창경궁 時敏堂은 왕세자가 공부하는 正堂으로, ‘時敏’이라 칭한 것은 『書經』「說命篇」에서 “[학문에] 늘 민첩하기를 힘써야 한다(務時敏).”는 의미에서 기인한 것이다.
 본서는 관례 의식을 문자로 묘사한 행사 반차도 17면과 의례에 참여한 관원들의 좌목 3면으로 구성되었다. 제1~2면은 관례가 진행될 시민당의 전경을 보여주는 도면을 묘사하였다. 제3면은 왕세자가 시강원익위사 관원, 의식을 행하는 집사관들에게 再拜를 받는 〈世子受宮官及執事拜圖〉, 제4면은 세자와 2품 이상의 문무관이 재배한 뒤 왕세가가 이에 답하여 재배하는 〈世子與二品以上相答拜圖〉, 제5면은 왕세자가 3품 이하의 관원의 배례를 받는 〈世子與三品以下拜禮圖〉, 제6면은 배례를 받는 왕세자가 계단 아래로 내려와 , 빈객을 맞이하는 〈世子降階拜師傅賓客圖〉, 제7면은 관례 시작 전에 의식을 주관하는 주인이 왕세자에게 절을 올리고 왕세자가 이에 답배하는 〈世子與主人答拜圖〉, 제8면은 세자가 관례를 명하는 국왕의 교서를 맞이하는 〈世子迎敎書圖〉, 제9면은 세자가 국왕의 교서를 받는 〈世子受敎書圖〉, 제10면은 세자가 동궁의 동쪽 처마 아래 기단에 들어가 삼가례를 준비하는 〈世子降階入東序圖〉, 제11면은 왕세자가 익선관에 곤룡포, 원유관에 강사포, 평천관에 면복을 차례로 바꿔 착용하는 〈初加圖再加三加同〉, 제12면은 면복을 갖춘 왕세자가 甘酒를 받는 〈世子受醴圖〉, 제13면은 빈이 세자의 자를 지어주는 〈賓字世子之圖〉, 제14면은 관례를 마치고 왕세자가 사부, 빈객에게 절하는 〈冠畢拜師傅賓客圖〉, 제15면은 관례를 마치고 2품 이상 관원과 서로 답배하는 〈冠畢與二品以上相答拜圖〉, 제16면은 관례를 마치고 3품 이하 관원에게 배례를 받는 〈冠畢受三品以下拜禮圖〉, 제17면은 다음날 왕세자가 편전인 선정전에서 국왕에게 조알례를 올리는 〈翌日宣政殿朝謁之圖〉로 구성되었다.
 문반차도 다음에는 관례에 참여한 시강원 관리들의 좌목을 적었는데, 主人 樂善君 李潚과 世子師 영의정 정태화, 賓은 좌의정 허적, 贊은 판서 박장원, 성균관 祭酒 송준길, 세자우빈객 민정중, 세자좌부빈객 이경억, 세자우부빈객 조복양, 酌醴官 사옹원 부제조 昌城都正 李佖, 傳敎官 좌승지 정익, 세자시강원 贊善 이유태, 세자시강원 輔德知製敎 김만균, 세자시강원 輔德 이단하, 세자시강원 弼善 이규령·홍주국, 세자시강원 文學 윤해·김석주, 세자시강원 司書 이적·이익상, 세자시강원 說書 정유악·신익상을 비롯하여 세자익위사 翊衛 백홍일·이숙진·윤채·김홍진, 세자익위사 翊贊 이후걸·홍주문, 세자익위사 衛率 윤평·김석익, 세자익위사 副率 송기태·이선악, 세자익위사 侍直 조특항·정재악, 세자익위사 洗馬 신필화·김만증 등이 기록되었다.
특성 및 가치
 1670년 왕세자 이순의 관례 순서를 문자로 기록한 반차도와 의식에 참여한 관원들의 성명이 기록된 사료로서 의미가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19세기 전반의 〈受敎圖〉는 시민당에서 치른 왕세자의 관례의식을 기록화로 제작한 것으로 본서와 함께 비교할 수 있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권18, 11년 3월 9일(병인)

집필자

정은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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