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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부군가장(巖隱府君家狀)

자료명 암은부군가장(巖隱府君家狀) 저자 송문술(宋文述), 송재주(宋在周)
자료명(이칭) 암은행상(巖隱行狀) , 巖隱行狀 저자(이칭) 宋文述(朝鮮) ; , 송문술(宋文述)
청구기호 K2-437 MF번호 MF35-123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叢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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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09](순조 9년)
· 청구기호 K2-437
· 마이크로필름 MF35-123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송문술(宋文述)

형태사항

· 크기(cm) 34.4 X 22.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7.7×17.4cm
· 인장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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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宋文述(1746~1813)이 조부 宋裕孫의 행적을 기록한 家狀과 宋在周가 부친 송문술의 행적을 기록한 行狀을 필사하여 합본한 책이다.
서지사항
宋文述의 行狀이 附錄되어 있어 1813년(순조 13) 이후에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필사한 인찰공책지에 謄寫한 책이다. 제2·3장의 張次가 ‘三十七’, ‘三十八’로 필사되어 있어 다른 필사본에서 ‘巖隱府君家狀’만을 추려 별도로 본 도서에 엮은 것으로 보인다. 표지 서명은 ‘巖隱行狀’이며 내제는 ‘巖隱府君行狀’이다. 책 제2장 우측 하단에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권수제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총 두 편의 글만으로 구성된 간략한 필사본이다. 「巖隱府君家狀」의 宋裕孫(1702~17620)은 본관이 鎭川이고, 자는 汝昆이며, 호는 巖隱이다. 鎭川宋氏의 시조는 新羅 大阿滄 宋舜恭이고, 이후로 고려 말 松亭 宋愚는 1372년(우왕 2) 同進士로 문과급제하여, 司憲府 持平을 거쳐 조선 초에는 禮曹參議, 判定州牧事, 判安邊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그 후 5世祖 瓢翁 宋英耉(1556~1620)가 관직 생활 중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여 파직을 당했다가 나중에 大宗伯에 증직되고 忠肅이란 시호를 받은 사실이 실려 있다. 증조는 宋有光, 조부는 宋㬅, 부친은 宋秀彦이고, 모친은 羅州羅氏이다. 부인은 完山李氏이고, 슬하에 1남 宋心休와 1녀를 두었다. 몇 차례 과거시험을 치렀지만 합격하지 못했으며 뚜렷한 행적은 파악되지 않는다. 손자 右承旨 宋文述이 찬술하였다. 송문술우승지를 역임한 해는 1809년(순조 9)이므로 『巖隱府君家狀』은 1809년에 찬술된 것으로 보인다.
「右承旨唾窩府君行狀」에 따르면 송문술의 자는 善之이고 호는 唾窩이며, 부친은 송심휴이고, 모친은 南陽洪氏이다. 1777년(정조 1) 文科 급제 후 靈巖郡守·司憲府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801년(순조 1) 金履喬, 金履度의 사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巨濟府로 유배되었으며, 1803년(순조 3)에 풀려난 후 同副承旨·金海府使 등을 지냈다. 첫째 부인 德水李氏 사이에 宋在殷, 둘째 부인 加平李氏 사이에 宋在周宋在魯를 두었다. 「右承旨唾窩府君行狀」은 송문술이 타계한 1813년(순조 13) 이후 몇 년 사이에 송재주에 의해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赤裳山史庫에 수장된 典籍類의 성격 파악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집필자

김채식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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