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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양기구전(崧陽耆舊傳)

자료명 숭양기구전(崧陽耆舊傳) 저자 김택영(金澤榮)
자료명(이칭) 崧陽耆舊傳 저자(이칭) 金澤榮(朝鮮) 撰
청구기호 K2-432 MF번호 MF35-187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叢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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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3(광무 7년)
· 청구기호 K2-432
· 마이크로필름 MF35-187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택영(金澤榮)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0.5 X 19.6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전사자(全史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5권(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8×15.5cm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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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말기 문인 金澤榮(1850~1927)이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까지 開城 인물의 행적을 정리한 전기 자료이다.
서지사항
木活字本으로, 제3권 권말에 있는 “大朝鮮建陽元年(1896)二月日 中樞院 活板”이라는 刊記와 “光武七年癸卯(1903)七月 中旬花開金澤榮序”의 기록 등을 통해 中樞院 書記官이었던 金澤榮이 撰하여 1896년(건양 1) 중추원에서 간행한 책에 다시 덧붙인 내용을 1903년(광무 7)에 추가로 간행한 책임을 알 수 있다. 제1면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제2권 권말에 京城(서울)의 ‘廣學書舖’ 광고 인장이 날인되어 있어 ‘廣學書舖’에서 판매했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세 차례 간행되었다. 첫 번째는 1896년(건양 1)으로, 「本朝事」 편에 수록된 1888년(고종 25) 김택영의 서문, 1885년(고종 22) 李建昌 발문, 1890년(고종 27) 李應翼의 발문, 1896년 金信榮의 발문은 이때 수록된 것이다. 두 번째는 1903년(광무 7)으로, 1896년 이후 金台濟(1827~?)의 『勝朝忠烈錄』을 얻어서 이를 새로 편집하여 「麗季忠臣逸事傳」을 지어 본서 앞에 수록하고, 김택영의 서문을 붙인 것이다. 세 번째는 1920년에 증보 산삭하여 『重編韓代崧陽耆舊傳』으로 재차 간행한 것이다.
김택영은 초간본을 간행한 뒤에 麗事, 즉 고려사에 잘못된 곳이 많다고 느꼈다. 이것이 재간행 이유인 것으로 보이는데, 서문에서 제시한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鄭麟趾의 『고려사』가 간신들의 의견을 솎아내지 못했다. 둘째 籠巖 金澍의 사례처럼 順菴 安鼎福이 폭넓게 변론하였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셋째 조선 중기 이후 사대부들이 閥閱을 숭상하여 顯祖가 없는 자는 淸班에 끼워 주지 않아 사회적으로 僞譜 제작이 만연하게 되었다.
본서는 『崧陽耆舊傳前篇』과 『崧陽耆舊傳』의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전자는 金台濟의 「麗季忠臣逸事傳」을 수록한 것이다. 후자는 1896년에 간행한 것을 실은 것이다. 그 외에 부록의 형식으로 「附崧陽雜事傳」이 수록되어 작게는 3항목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崧陽耆舊傳前篇』의 「麗季忠臣逸事傳」은 2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媤弟 김신영王性淳이 교열하였다. 권별 수록 인물은 다음과 같다. 권1에는 鄭夢周, 李穡, 禹玄寶, 李崇仁, 金震陽, 徐甄, 崔瑩, 吉再, 金澍(金濟), 趙狷(鄭矩·元宣), 南乙珍, 李養中, 車原頫, 元天錫, 崔添老(崔邇), 林先味, 曺義生·孟氏, 具鴻(朴門壽·成思齊·成溥·金冲漢·閔安富·韓哲冲·邊肅·徐輔·李孟芸·蔡貴河·朴湛·趙安卿·范世東·閔普文), 武士四十八人 등이 수록되었다. 권2에는 金自粹, 崔瀁, 尹忠輔, 朴諏(朴自完), 鄭溫, 河自宗, 趙承肅, 閔由誼, 安瑗, 李行, 趙瑜, 崔七夕, 田貴生, 申晏, 朴愈, 金若時, 尹璜, 李瓊, 孫登, 河檠, 崔淸 등을 수록하였고, 말미에 소주로 저술 경위를 서술한 識文이 있다.
두 번째 『崧陽耆舊傳』의 「本朝事」는 조선의 인물을 다루었다. 1888년(고종 25) 寒食에 김택영古德山房에서 쓴 「崧陽耆舊傳序」가 있다. 권1은 朴載鉉·金重熙·張漢炯 등이 교정하였다. 먼저 「學行傳」 이하 각 傳마다 간략한 서문이 있고 해당 인물을 수록하였다. 徐敬德先生, 金履道(林大秀), 馬羲慶·李慶昌, 金玄度(金靜厚), 尹忠甲(崔繼林), 金斗文(張昌復), 高敬恒, 金時鐸·許增, 張玄聞(李春鞾), 趙有善(韓敬儀·馬游·韓光鎭), 金憲基先生(金天復), 任相翼, 姜文豹 등이다.
권2는 먼저 「文詞傳」으로 車天輅(車軾·車雲輅), 朴民瞻·曺臣俊·馬尙遠, 石之珩(流寓), 金普, 林昌澤, 韓在濂, 朴文逵 등이 수록되었으며, 書畵로는 韓濩, 林景翰(韓宗樂), 李尙權 등이 첨부되어 있다. 다음은 「忠義傳」으로 宋象賢, 劉克良(流寓), 金鍊光, 金漬(朴乃成), 田見龍, 朴鐵壽(高洽), 徐佑申(李綏邦·金興祖)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隱逸傳」의 韓舜繼, 「循良傳」의 金明彦(金漢卿), 李文欽 등이 있다.
권3은 교정자가 秦永濂, 林圭永, 韓承履 등으로 바뀐 것이 특징이다. 「孝友傳」은 閔伯和, 姜千年, 林應井, 韓大用, 任千壽, 趙以義, 馬最常, 金尙默, 李亨植, 胡貴福, 金龜孫, 河繼源妻 崔氏, 張敟妻 趙氏, 權泳妻 朴氏, 趙絅溫妻 崔氏 등이고, 「貞烈傳」은 金以益妻 李氏, 李漢晳妻 金氏, 車尙敏妻 金氏, 朴碩柱妻 黃氏, 高俊實妻 宋氏, 玄錫祺妻 金氏, 金氏二烈婦 등이다. 이어 백성의 구휼에 힘쓴 사람을 입전한 「任恤傳」의 崔舜星, 「奇節傳」의 李埱, 薛繩儒 등과 「武勇傳」의 朴奎晃, 李護軍, 朴遇彩, 崔錫朋, 玄必觀 등이 있고, 「技術傳」으로 田禹治, 李馝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3 말미에는 中樞院活板으로 1896년(건양 1) 4월에 간행되었다는 간기가 있다. 다음은 1885년(고종 22) 3월 李建昌摩尼山房에서 쓴 발문, 1890년(고종 27) 李應翼의 발문, 1896년 3월 媤弟 김신영의 발문이 있다. 다음은 부록으로 「附崧陽雜事傳」이 있는데 간략한 서문에서 이것이 耆舊傳에 해당하지 않지만 나중에 地志를 편찬할 때 歌客과 名媛을 기록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에 부록한다고 밝히고, 禹平淑(王錫中), 黃進 등을 입전하였다.
특성 및 가치
중국인들에게 한국 역사를 소개할 목적으로 저술한 『韓史綮』와 함께 김택영고려 유민 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개성 출신의 인물만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邑誌의 성격도 갖는 자료이다. 특히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高麗史』 및 고려 말기 연구에 참조가 된다.

집필자

이동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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