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중경지(中京誌)

자료명 중경지(中京誌) 저자 김육(金堉), 김이재(金履載), 조경하(趙敬夏)
자료명(이칭) 中京誌 저자(이칭) 金堉(朝鮮) 原撰;
청구기호 K2-4307 MF번호 MF35-25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方志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전자도서관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81(고종 18년)
· 청구기호 K2-4307
· 마이크로필름 MF35-256
· 기록시기 1881年(高宗 18) 以後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육(金堉) 원찬(原撰)

형태사항

· 크기(cm) 31.7 X 20.3
· 판본 목활자판(木活字版)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2권(卷) 6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2×16.3㎝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개성유수부의 제반 사항을 정리한 사료이다.
서지사항
 표제와 권수제, 판심제는 ‘中京誌’이다. 12卷 6冊 구성의 五針線裝本으로 종이는 일반적인 楮紙를 사용하였다. 표지는 황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고 서명은 표지 위에 묵서하였으며, 책별로 표지에 ‘一’에서 ‘六’까지 책차를 표기하였다. 본문은 四周單邊, 有界, 上下向黑魚尾에 쓴 10行 20字 小字雙行 木活字本이다. 권수면 상단에 정방형의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고, ‘續誌跋’에 ‘上之十八年辛巳(1881)陽月 留守豊壤趙敬夏跋’이라는 기록이 있어 1881년 이후 간행본임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1881년(고종 18) 개성유수였던 趙敬夏가 기존에 내려오던 여러 종류의 『中京誌』를 모으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12卷 6冊으로 編刊하였다. 『중경지』는 본래 原誌나 續誌에서는 ‘松都志’라는 제목을 사용하였으나, 1824년(순조 24) 유수 金履載가 원지와 속지를 합하면서 서문에 松都中京임을 밝힌 뒤로 ‘中京誌’로 제목을 변경하였다. 본서의 서두에 최초 『송도지』부터 본 『중경지』까지 각각의 서문과 발문을 수록하였다. 그 내용을 시기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648년(인조 26) 金堉이 작성한 中京舊誌序를 시작으로 1700년(숙종 26) 李墩의 舊誌跋, 1705년 嚴緝의 舊誌跋, 1757년(영조 3) 吳遂采의 續誌跋, 1782년(정조 6) 鄭昌順의 小識, 1783년(정조 7) 徐有防의 補遺序, 1785년(정조 9) 尹墩의 補遺跋, 1802년(순조 2) 金文淳의 續誌序, 1824년 金履載의 原續合誌序, 1830년(순조 30) 徐憙淳의 原續合誌跋, 1855년(철종 6) 趙秉夔의 中京誌舊序, 1881년(고종 18) 趙敬夏의 續誌跋 등이다. 본 지지가 나오기까지 십여 차례 증보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최초 1책이던 『송도지』가 12卷 6冊 규모의 『중경지』로 변모하였다. 본문의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中京誌目錄에 序跋·凡例·地圖가 있으며, 권1에 高麗紀年·國朝紀事, 권2에 彊域·沿革·君名·城郭·烽燧·部方·官員·姓氏·戶口·田制·風俗·土産, 권3에 山川·名勝, 권4에 宮殿·官廨·陵墓, 권5에 學校·祠壇·祀典, 권6에 關防·兵制·職役·廩料·郵撥·橋樑·寺刹, 권7에 古蹟·題詠, 권8에 人物·才行·忠信·孝子, 권9에 孝婦·烈女, 권10에 附錄·增補, 권11에 文料·蔭仕·司馬·武科·武蔭, 권12에 留守·經歷·郡事·敎授·壽職 등으로 구성되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 후기 개성유수부의 역사·지리·행정·재정·군사·풍속·인물 등의 제반 사항을 정리하고 있다. 특히 17세기 이후 시기별 개성의 변화상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집필자

임성수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