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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과현읍지(玉果縣邑誌)

자료명 옥과현읍지(玉果縣邑誌) 저자 옥과현(玉果縣) 편(編)
자료명(이칭) 옥과현읍지(전라북도)(玉果縣邑誌(全羅北道)) , 玉果縣邑誌(全羅北道) 저자(이칭) 玉果縣(朝鮮) 編 , 옥과현(玉果縣)
청구기호 K2-4276 MF번호 MF35-249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方志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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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사년미상(寫年未詳)
· 청구기호 K2-4276
· 마이크로필름 MF35-249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옥과현(玉果縣)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5.8 X 22.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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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전라북도 옥과현 지역 정보를 정리한 지리지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는 ‘玉果縣邑誌’이다. 황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표지 좌측 상단에 표제와 그 아래에 小字로 ‘全羅北道’라는 글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의 필사에는 無郭, 無絲欄, 無版心의 楮紙를 사용하였다. 본문 중 잘못 기재한 부분을 지우고 다시 글씨를 작성한 흔적이 보인다. 본문 첫 장 우측 하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전체 목록은 없으며, 내용 구성은 道路, 建置沿革, 形勝, 郡名, 官職, 山川, 姓氏, 風俗, 壇廟, 公廨, 學校, 堤堰, 倉庫, 物産, 橋梁, 驛院, 樓亭, 寺刹, 古蹟, 人物, 孝子, 烈女, (新增)題詠, 旱田·水田, 進貢, 糶糴, 田稅, 大同, 均稅, 俸廩, 軍兵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과현은 현재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입면, 겸면, 오산면 일대에 해당한다. 건치연혁에 따르면 옥과는 백제 때 果支縣이라 하였고, 果兮縣이라고도 불렸다. 신라 때 옥과로 이름이 바뀌고, 秋城郡의 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초에 寶城郡에 소속시켰으며, 1173년(고려 명종 2) 監務를 두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縣監을 두었다. 도로 항목에는 다른 읍지의 강계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다. 동쪽으로 남원까지 30리, 서쪽으로 담양까지 10리, 남쪽으로 동복까지 30리, 북쪽으로 순창까지 10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군명 항목에는 ‘果支, 雪山’이 적혀 있다.
 본서에는 읍지에 빠지지 않는 방리 항목이 없고, 宦蹟이나 先生案이 없어서 작성자나 편찬 시기를 확실히 알 수 없다. 항목의 수나 내용 면에서도 모두 소략하다. 본서의 체제, 구성, 내용 등이 변화하는 순서를 살펴보면, 1871년(고종 8)의 『湖南邑誌』 第2冊 「玉果縣誌」와 1895년(고종 32)의 『湖南邑誌』 第2冊 수록본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외에 옥과현을 다룬 읍지는 1788년(정조 12)경의 『玉果縣誌』, 1899년(광무 3)의 『玉果郡邑誌』 등이 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위에서 언급한 두 『湖南邑誌』와 다르게 누정의 이름과 소재뿐만 아니라 제영이 주기로 처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고적과 인물 등의 항목에도 관련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玉果郡邑誌』(奎 10775)
玉果縣誌』(一簑古 915.142-Og1)
湖南邑誌』(奎 12175, 12181)
서울大學校 奎章閣 編, 『奎章閣韓國本圖書解題 續集』 4-史部, 1997.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http://kyujanggak.snu.ac.kr/geo/)

집필자

양윤정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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