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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주동해비(陟洲東海碑)

자료명 척주동해비(陟洲東海碑) 저자 허목(許穆)
자료명(이칭)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 陟洲東海碑 저자(이칭) 미상|허목(許穆)|허목(許穆)|미상|미상 , 許穆(朝鮮) 撰병書
청구기호 K2-4003 MF번호 MF35-2912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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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09](숙종 35년)
· 청구기호 K2-4003
· 마이크로필름 MF35-291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허목(許穆) 찬병서(撰並書)

형태사항

· 크기(cm) 45.6 X 29.0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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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후기 삼척육향산 정상에 세워진 陟州東海碑의 비문을 탁본하여 첩장한 것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退潮碑’이다. 不分卷 1帖으로 구성된 折帖本으로 표지는 황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서명은 제첨 위에 필사하였다. 25折로 구성되어 있고 종이는 두꺼운 楮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은 板式이 없는 拓印本으로, 비의 前面은 1行 1字, 陰記는 4行 6字로 이루어져 있으나, 권말 4면은 1行 2字, 양각으로 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비문은 許穆(1595~1682)이 찬술하고 역시 허목이 篆書로 썼다. 허목은 眉篆 혹은 眉叟篆이라고 하는 독특한 古篆體를 쓰고 있었는데, 이러한 서법은 당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狂書’니 혹은 ‘怪行’이니 하는 비판을 받았다. 1660년(현종 1) 禮訟 당시 허목은 서인 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논쟁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서인 측의 견해가 채택되면서 결국 논쟁에서 패배하고 같은 해 9월에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
삼척부사에 부임한 허목은 향약을 시행하거나 社倉을 설치하는 등 향촌 문제의 해결에 주력하는 한편, 「東海頌」을 지어 이를 비석에 새겨서 潮水의 피해를 막고자 하였다. 이 비석을 세운 뒤 조수의 피해가 없어졌다고 하여 退潮碑라고도 한다. 비문의 내용은 먼저 동해의 웅대한 모습과 바다의 풍요로움과 조화를 묘사한 뒤에 바다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내용 중에는 蛟人이나 天吳, 夔 등 神人과 神獸 등에 대한 표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도가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 비문은 독특한 서체로 쓰여졌기 때문에 비문을 구하려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탁본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특성 및 가치
 허목의 독특한 古篆體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당대 서체 흐름의 한 조류를 밝힐 수가 있다. 척주동해비의 탁본 자료는 본서 이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삼척시립박물관 등 다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심현섭, 「미수 허목의 서예미학 정초」, 『서예학연구』 19, 2011.
임채우, 「척주동해비에 나타난 도가적 세계관의 문제」, 『도교문화연구』 39, 한국도교문화학회, 2013.
한국학중앙연구원 편, 『장서각소장 탁본자료해제Ⅱ』, 2005.

집필자

이근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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