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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탄강구기비(兩聖誕降舊基碑)

자료명 양성탄강구기비(兩聖誕降舊基碑) 저자 정조(正祖)
자료명(이칭) 兩聖誕降舊基碑 저자(이칭) 正祖(朝鮮王, 1752 - 1800) 御撰竝書
청구기호 K2-3954 MF번호 MF35-291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金石類/碑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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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87(정조 11년)
· 청구기호 K2-3954
· 마이크로필름 MF35-291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정조(正祖) 어찬병서(御撰竝書)

형태사항

· 크기(cm) 44.7 X 34.3
· 판본 탁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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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87년(정조 11) 정조定宗太宗의 탄신을 기리기 위하여 이들이 태어난 咸境道 咸興 歸州洞에 세운 비문의 탁본을 장황한 첩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兩聖誕降舊基碑’이며, 2책 표제 아래에 ‘正祖’라고 墨書되어 있다. 不分卷 1冊으로 총 2책이 있으나 複本으로 내용은 동일하다. 표지 장황은 1책은 비취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는 붉은 실의 5침 線裝本이고, 2책은 옥색 비단에 구름 문양이 있는 折帖本으로, 본문을 제외한 內紙도 흰 비단으로 덧씌워져 있다. 1책은 서명을 표지 위에 필사하였고, 2책은 비단으로 만든 제첨 위에 필사하였다. 1책은 9장, 2책은 21절로 구성되어 있고 종이는 두꺼운 楮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은 板式이 없는 拓印本으로, 비의 前面은 1行 1字, 陰記는 4行 6字로 이루어져 있다. 1책 본문 첫 장 상단에 정방형의 ‘藏書閣印’을 날인하였고, 표지 이면에는 ‘西紀一九七三年六月藏書閣再裝’이란 스탬프를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前面에 1787년(정조 11) 10월 ‘兩聖誕降舊基’라고 쓰고 비를 세우게 된 경위를 서술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조가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는 동년 2월 덕원의 幼學 鄭舜翼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덕원부赤田 湧珠里는 성조의 집터로서 銘을 새긴 곳인데, 비각이 퇴락하였으나 아직 상고할 수 있으니 비를 세우고 건물을 짓자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리고 4월에는 北評事를 역임한 副校理 金履翼경흥부赤島赤池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비석 건립을 주장하였다. 정조가 이 두 요청을 모두 승인하면서 함경도 두 군현에는 비석이 건립되었다. 그러자 동년 7월 前 主簿 李榏咸興 歸州洞정종태종이 태어난 지역으로 1658년(효종 9) 咸鏡監司 鄭知和가 殿을 세웠고, 1661년(현종 2)에는 감사 權堣가 殿 둘레에 소나무를 심었으며, 1710년(숙종 36)에는 감사 趙泰東이 보수하고 ‘慶興殿’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나, 1명의 내노가 수직할 뿐 表記한 것이 없으니 비석을 세워 사적을 기록하자고 주장하였다. 이 상소에 대해 정조영조乙亥年(1755, 영조 31)太祖가 탄강하신 해가 돌아왔다고 하여 永興 黑石里에 비석을 세운 사실을 원용하여 흑석리에 비석을 세울 것을 지시하였다. 비문에 적혀 있듯이 정미년(1787, 정조 11)태종이 태어난 지 ‘七回’가 되는 해였다. ‘兩聖誕降舊基碑’는 정조가 직접 작성하여 9월 10일 함흥 귀주동으로 내려보냈다.
비문에는 “덕원용주리경흥적도적지에 碑를 세우고 銘을 하였는데, 이는 王跡이 시작된 곳을 감히 표시해두지 않을 수 없고, 오직 영원히 전해지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성인이 탄생하신 터가 있어서 한 지역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흠모하고 있는데, 그곳을 감히 빼놓을 수 있으랴. 함흥 귀주동은 바로 우리 桓祖太祖가 사시던 곳이고 定宗太宗이 탄강한 곳이기도 하다. 소나무를 심어놓고 慶興殿이라는 편액을 걸어놓은 곳이 바로 그 터인데, 옛날에는 紀實碑가 없다가 공교롭게도 이번 丁未年태종이 태어났던 丁未年과 부합되고 용주리적도적지를 뒤이어 비를 세우자는 논의가 일어났으니 아, 그 역시 기이한 일이었다. 그리고 옛날 영조 乙亥年太祖乙亥年에 탄생했다 하여 그해에 영흥부 흑석리에 비를 세우고 陰記를 御製로 써서 그 터임을 표시했는데, 그로부터 33년 후 소자가 또 그 일을 했으니, 그도 미리 정해진 명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태종대왕이 탄생한 후 일곱 번째 돌아온 정미년이요, 이 소자가 즉위한 지 11년째 되는 해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이 비문은 조선시대 역대 왕에 대한 현창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誕降舊基碑의 건립 목적과 경위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또한 지역사적으로 함경도의 사적을 이해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弘齋全書

집필자

문광균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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