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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록환안형지안(璿源錄還安形止案)

자료명 선원록환안형지안(璿源錄還安形止案) 저자 종부시(宗簿寺) 편(編)
자료명(이칭) 全南道茂朱縣赤裳山城所上還安形止案 저자(이칭) 宗簿寺(朝鮮) 編
청구기호 K2-3870 MF번호 MF35-614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璿源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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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650(효종 1년)
· 청구기호 K2-3870
· 마이크로필름 MF35-614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종부시(宗簿寺)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7.3 X 25.6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 奉使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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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650년(효종 1) 6월 21일에 중건된 무주 적상산성 선원각에 선원록과 어첩을 이안하면서 작성한 형지안이다.
서지사항
卷首題는 ‘全南道茂朱縣赤裳山城所上還安形止案’이고, 표제는 ‘璿源錄還安形止案’이다. 표지 서명 우측에 ‘庚寅六月二十一日赤裳山城’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좌측의 첨지에는 ‘順治七年庚寅’이라는 기록이 있다. 표지 장황은 빛바랜 황색 종이로 하였다.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空冊紙에 10行으로 墨書하였다. 제1면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으며, 표지와 본문에 ‘奉使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선원록형지안의 구성은 ‘形止’와 ‘선원록 목록’ 및 담당자 명단인 ‘座目’으로 구성된다. ‘형지’는 선원록 봉안·포쇄·선원각 수개에 대한 전말을 기록한 것으로, 사안에 대해 국왕에게 보고·요청하는 啓辭와 적상산성에 도착하기까지의 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본 형지의 내용은 선원각 중건에 관한 논의와 이안 과정 및 봉과 방식으로 구성된다. 선원각 중건의 논의는 1650년 2월 24일에 郭岌이 어첩과 선원록을 봉안하기 위해 적상산사고에 내려가 봉안각을 봉심한 후 선원각이 雨漏處가 많을 뿐만 아니라, 기둥이 내려앉아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던 것을 보고 무주현감 이휘조와 상의하여 선원록청에 첩보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어첩과 선원록을 大別館에 移安하면서 선원각을 즉시 훼철하고 사고와 함께 수리를 시작하였다. 그해 5월에 무주현감이 선원각 봉안각이 이미 중건되었으니 다시 봉안할 수 있다는 일로 전남감사에게 첩보하였고, 이에 전남감사예조에 장계를 올리고, 예조에서 계문하여 임금의 재가를 받게 되었다. 이에 1650년 6월 13일에 낭청 종부시직장 곽급이 辭朝하고 동월 20일에 산성에 도착하여 대별관에 숙배하고 이안하였다. 이후 어첩과 선원록이 봉안된 궤를 열어 봉심한 후에 무주현감 이휘조사고참봉 朴有誠과 함께 절차에 따라 봉안한 후 封裹를 수행하였다.
선원록에 기재된 목록은 璿源錄 4궤와 御牒 1책, 역대 왕들의 宗親錄과 類附錄, 式年宗親類附錄 및 形止案 등으로,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天~宇字櫃까지의 서궤에 봉안하였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왕실 기록물 보존 체계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또한 현 장서각 소장본의 소종래를 파악하는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정미, 「朝鮮時代 史庫形止案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5.

집필자

김정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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