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선원보략수정의궤(璿源譜略修正儀軌)

자료명 선원보략수정의궤(璿源譜略修正儀軌) 저자 종부시교정청(宗簿寺校正廳) 편(編)
자료명(이칭) 선원보략수정시종부시의궤(璿源譜略修正時宗簿寺義軌) , 璿源譜略修正時宗簿寺義軌 , [1756]선원보략수정의궤(璿源譜略修正儀軌) 저자(이칭) 종부시(조선) 편(宗簿寺(朝鮮) 編) , 宗簿寺(朝鮮) 編 , 종부시
청구기호 K2-3853 MF번호 MF35-542
유형분류 고서/의궤 주제분류 국왕·왕실/의례/의궤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56(영조 32년)
· 청구기호 K2-3853
· 마이크로필름 MF35-54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종부시교정청(宗簿寺校正廳)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6.1 X 28.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40.0×23.0cm
· 인장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756년(영조 32)종부시에서 존호 의례를 거행한 사실을 『선원보략』에 수정한 사안에 대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표제와 書根題는 ‘璿源譜略修正儀軌’이고, 권수제는 ‘璿源譜略修正時宗簿寺儀軌’이다. 표지 서명 우측에 ‘英宗’, ‘丙子全羅道’라는 기록이 있다. 표지 장황은 연화와 보상화 당초 등의 무늬가 있는 황색 종이로 하였는데, 뒤표지 이면에 ‘大正八年三月’의 改修 기록이 있다.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四周雙邊에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의 판식을 가진 木板 印札空冊紙에 12行으로 墨書하였다. 제1면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755년(영조 31) 12월 13일에 영조는 의례를 행한 뒤에 어첩과 『선원보략』을 종부시에서 수정하라고 전교하였다. 이것은 육상궁에게 시호를 올리고, 대왕대비를 비롯해 영조와 왕비에게 존호를 올린 의례를 말한다. 영조는 『선원보략』 2건을 紙衣로 만들어 1건씩 函에 담아 진상하라고 명하였다. 또한 왕세자에게 바칠 1건도 진상건과 동일하게 冊衣와 함을 제작하라고 하였다. 『팔고조도』는 2건을 제작하여 1건은 內入하고 나머지 1건은 육상궁에 봉안하며, 이번 수정은 교정청을 설치하지 말고 종부시에서 주관하게 하였다. 12월 23일에 영조는 지방 네 곳의 사고 선원각에 어첩을 봉안할 때의 의례 절차를 정족산 사고의 예에 의해 거행하라고 하였다. 선원록의 봉안은 종부시도제조제조 중 당상 1원이 奉安使가 되고, 종부시·主簿·直長 중에서 1원이 낭청이 되어 거행하는 것이 규례이다. 1702년(숙종 28)의 「御牒璿源錄奉安時事目」은 실록을 봉안하는 의례를 참고하여 마련된 것이다. 정족산 선원각에 대한 형지안을 분석해보면 이러한 봉안 의례가 거의 준수되었다. 영조1713년(숙종 39)에 봉안사로 정족산 선원각에 선원록을 봉안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전교를 내릴 수 있었다. 12월 28일에 영조육상궁에 봉안할 『팔고조도』는 當宁 1장만을 수정하고, 내입할 『팔고조도』는 수정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지시하였다. 본 의궤에는 『국조어첩』과 『팔고조도』의 繕寫者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보통 『국조어첩』과 『팔고조도』는 宗臣이 선사하였는데, 당시에 海興君長溪君만이 있었다. 종부시에서 이들이 눈이 어두워 글씨 쓰기가 어렵다고 아뢰자, 영조는 글씨 잘 쓰는 寫字官에게 시키면 된다고 하였다. 이는 종신에게 글씨를 쓰게 한 규례가 왕실 족보라는 상징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반사건을 수취하여 改張하는 작업은 1735년(영조 11)1747년(영조 23), 1753년(영조 29)에 반사한 이들이 대상이었다. 1756년(영조 32) 1월 10일의 甘結에 의하면 반사 286건은 매 件마다 58장을 改張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정을 마친 『선원보략』과 『팔고조도』, 『국조어첩』은 2월 22일에 창경궁의 정문인 弘化門을 통과하여 明政殿으로 진상하였다.
특성 및 가치
 본 의궤는 영조가 私親인 육상궁에게 諡號를 加上하고 그 사실을 『팔고조도』에 기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자료이다. 영조가 『선원보략』과 『팔고조도』의 수정에서 사친에 대한 追崇을 지속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종부시등록』(奎 13006-1)
조계영, 「조선후기 선원각의 왕실 기록물 보존체계」, 『조선시대사학보』 55, 2010.

집필자

조계영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