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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보략교정청의궤(璿源譜略校正廳儀軌)

자료명 선원보략교정청의궤(璿源譜略校正廳儀軌) 저자 종부시교정청(宗簿寺校正廳) 편(編)
자료명(이칭) 선원보략수정시교정청의궤(璿源譜略修正時校正廳儀軌) , 璿源譜略修正時校正廳儀軌 저자(이칭) 종부시교정청(조선) 편(宗簿寺校正廳(朝鮮) 編) , 宗簿寺校正廳(朝鮮) 編
청구기호 K2-3846 MF번호 MF35-54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璿源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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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47(영조 23년)
· 청구기호 K2-3846
· 마이크로필름 MF35-54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종부시교정청(宗簿寺校正廳)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9.5 X 30.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40.1×33.2cm
· 인장 宗簿寺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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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47년(영조 23)仁元王后에게 올린 존호를 『국조어첩』과 『선원보략』에 수정한 사안에 대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권수제는 ‘璿源譜略修正時校正廳儀軌’이고, 표제와 書根題는 ‘璿源譜略修正儀軌’이다. 표지 서명 우측에 ‘英宗’, ‘丁卯年校正廳’, ‘全羅道’라는 기록이 있다. 표지 장황은 연화와 보상화 당초 등의 무늬가 있는 황색 종이로 하였다.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四周雙邊에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의 판식을 가진 木板 印札空冊紙에 12行으로 墨書하였다. 제1면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으며, 표지와 본문에는 ‘宗簿寺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747년 2월 20일에 종부시낭청이 대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린 사실을 『국조어첩』과 『선원보략』에 써넣기를 제조에게 아뢰었다. 이때의 대왕대비는 숙종의 비인 仁元王后로 회갑을 맞아 존호를 올린 것이다. 이번 수정은 1744년(영조 20)영조기로소 입소를 수정할 때의 전례에 따라 교정청을 설치하여 거행하였다. 2월 20일에 바로 甘結을 내려 수정에 필요한 自作板 15立과 작업을 담당할 唱準과 小木匠, 木手 등을 동원하였다. 1747년의 『선원보략』 수정에서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冊衣에 사용된 비단의 변화이다. 3월에 교정청의 낭청은 진상건과 진헌건 『선원보략』의 책의를 어떤 비단으로 할 것인지를 당상에게 여쭈었다. 冊衣란 책의 몸체를 보호하기 위해 입히는 옷이라는 뜻으로 표지를 지칭한다. 보통 진상건과 진헌건 『선원보략』은 비단과 종이 두 가지로 책의를 제작하였다. 1747년 이전에 책의에 사용한 비단은 무늬가 있는 緞衣였는데 紋緞에 대한 禁令이 반포되었기 때문이다. 1746년(영조 22)영조는 사치를 금하는 방법으로 중국산 비단 수입을 강력히 금하고 이를 위반한 자를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禁紋事目」을 반포하였다. 따라서 책의를 이전의 藍大緞 대신에 藍色廣織으로 만들 것을 영조에게 여쭈었다. 3월 17일에 영조가 紬衣로 만들라고 명하여 1747년에 『선원보략』의 비단 책의는 眞藍表紬를 사용하였다. 이를 계기로 1748년(영조 24)1751년(영조 27)의 비단 책의에도 紬가 사용되었으며, 더이상 『선원보략』의 책의에 紋緞은 쓰이지 않았다. 책의의 비단이 변화됨에 따라 『선원보략』을 싸는 겹보자기의 비단도 바뀌었다. 겹보자기의 안은 책의와 같은 진남표주로 하였고 바깥은 大紅表紬로 만들었다. 기존에 반사했던 『선원보략』은 모두 거둬들여 改張하는 방법으로 수정하였기 때문에 의궤에는 각 감영으로 보낸 關文이 많다. 1747년에 새로 반사하는 대상자는 「譜略新頒記」에 수록하였고, 1735년(영조 11)에 반사받은 명단은 「璿源譜略乙卯年頒賜記」에 수록하였다. 4월 11일에 교정청 관원들은 儀仗과 鼓吹를 갖추어 창덕궁 인정전으로 나아가 『선원보략』을 진상하였다. 4월 24일에 비망기를 내려 교정청 관원 이하에 노고를 시상하였다.
특성 및 가치
 영조 재위 52년간 지속해온 『선원보략』 수정은 1740년대에 이르러 체계적으로 거행되었다. 본 의궤는 1746년(영조 22)의 「금문사목」을 계기로 책의에 사용된 비단이 변화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조계영, 「조선왕실 봉안 서책의 장황과 보존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집필자

조계영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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