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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보략교정청의궤(璿源譜略校正廳儀軌)

자료명 선원보략교정청의궤(璿源譜略校正廳儀軌) 저자 종부시교정청(宗簿寺校正廳) 편(編)
자료명(이칭) 璿源譜略修正時校正廳儀軌 , 선원보략수정시교정청의궤(璿源譜略修正時校正廳儀軌n1-1책) 저자(이칭) 종부시(조선) 편(宗簿寺(朝鮮) 編) , 宗簿寺(朝鮮) 編
청구기호 K2-3843 MF번호 MF35-54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璿源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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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53(영조 29년)
· 청구기호 K2-3843
· 마이크로필름 MF35-54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종부시교정청(宗簿寺校正廳)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7.7 X 28.6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40.0×23.2cm
· 인장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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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53년(영조 29)에 元孫의 탄생과 毓祥宮의 시호를 『선원보략』에 수정하는 사안에 대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표제와 서근제는 ‘璿源譜略儀軌’이다. 권수제는 ‘璿源譜略修正時校正廳儀軌’이다. 표지 서명 우측에 ‘英宗’, ‘癸酉年校正廳’이라는 기록이 있다. 표지 장황은 연화와 보상화 당초 등의 무늬가 있는 황색 종이로 하였다.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四周雙邊에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의 판식을 가진 木板 印札空冊紙에 12行으로 墨書하였다. 제1면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753년 5월 12일에 종부시는 어첩에 元孫의 탄생을 기재하라는 영조의 명을 받들어, 1735년(영조 11)에 ‘嗣元孫’으로 쓴 전례를 따르겠다고 아뢰어 윤허하였다. 5월 13일에 예조에 關文을 보내어 원손이 탄생한 宮號와 殿號, 연월일을 보내라고 요청하였다. 이어 6월 28일에는 육상궁의 추상시호를 『국조어첩』과 『팔고조도』, 『선원보략』에 수정하기 위해 종부시에서 교정청을 설치하여 거행하고자 아뢰었다. 이번 『선원보략』은 진상 15건과 진헌 10건, 봉안 5건 외에 원손에게 진헌할 1건을 추가하여 모두 31건을 인출하였다. 7월 3일에 교정청은 冊衣의 재료를 1751년(영조 27)에는 紬衣로 하였고, 1752년(영조 28)에는 紙衣로 하였는데 이번에는 무엇으로 할지 아뢰었다. 영조1752년의 전례를 따라 지의로 장황하라고 명하였다. 7월 4일의 甘結에 의하면 『국조어첩』과 『팔고조도』는 지방 네 곳의 사고 선원각과 육상궁에 봉안할 5건을 제작하였다. 사고에 봉안할 『국조어첩』과 『팔고조도』는 각기 한 궤에 담았기 때문에 궤 8부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육상궁에 봉안할 『국조어첩』과 『팔고조도』는 하나의 궤에 모두 담아 봉안하였다. 보통 궤에는 방충 기능을 하는 芎芎 가루 주머니와 서책 위를 덮는 楮注紙를 넣는다. 『선원보략』은 한 건을 7책으로 粧冊하였는데 궤 하나에 한 건씩 담아 진상과 봉안하였다.
본 의궤에서 주목되는 논의는 서책을 담는 궤의 크기에 관한 것이다. 7월 10일 교정청에서 당상에게 稟目을 올려 『선원보략』 궤를 작게 만들어 한 건씩만 담게 되면 궤의 수가 26부나 되고, 궤를 크게 만들어 여러 건을 담으면 傳敎를 어기게 된다고 아뢰었다. 1752년영조가 궤의 크기가 담는 물건보다 커지는 것을 염려하여, 담을 물건에 맞게 제작하라고 전교한 것을 말한다. 당상은 전교에 따라 책 수에 맞게 궤의 크기를 제작하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7월 26일에 육상궁에 봉안할 『팔고조도』을 改張하려고 보니, 이전에 藍大緞으로 帖衣를 한 상태였다. 이에 1746년(영조 22)의 「禁紋事目」에 따라 藍廣的으로 작첩하겠다고 아뢰었다. 이와 같이 책의가 바뀜에 따라 책의에 제목을 쓴 비단도 白方絲紬로 바꾸었다. 9월 15일에 수정한 『선원보략』을 교정청 관원 이하가 儀仗을 갖추어 창경궁 明政殿으로 나아가 진상하였다.
특성 및 가치
 본 의궤는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영조의 私親 추숭의 일면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또한 영조가 시행한 節用愛民의 국정 운영을 서책의 형태와 보호용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조계영, 「조선왕실 봉안 서책의 장황과 보존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6.

집필자

조계영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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