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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록이정청의궤(璿源錄釐正廳儀軌)

자료명 선원록이정청의궤(璿源錄釐正廳儀軌) 저자 선원록이정청(璿源錄釐正廳) 편(編)
자료명(이칭) 선원록이정청의궤(璿源錄釐正廳儀軌n1-3책) , 璿源錄釐正廳儀軌 저자(이칭) 선원녹이정청(조선) 편(璿源錄釐正廳(朝鮮) 編) , 璿源錄釐正廳(朝鮮) 編
청구기호 K2-3834 MF번호 MF35-541, 228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璿源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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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680(숙종 6년)
· 청구기호 K2-3834
· 마이크로필름 MF35-541, 228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선원록이정청(璿源錄釐正廳)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9.6 X 31.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3책(冊)
· 판식 반곽(半郭) 40.3×23.1cm
· 인장 一品奉使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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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679년(숙종 5)에 선원록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釐正廳을 설치하여 1680년(숙종 6)에 『선원록』 50권을 완성한 사안에 대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표지 서명을 따랐다. 표지 서명의 우측에는 ‘肅宗’, ‘赤裳山城上’이라는 기록이 있다. 不分卷 3冊으로 책차는 ‘上, 中, 下’이다. 표지 장황은 빛바랜 황색 종이에 사방연속 능화무늬가 있다.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四周雙邊에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의 판식을 가진 木板 印札空冊紙에 12行 24字로 墨書하였다. 제1면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으며, 표지와 본문에 ‘一品奉使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 의궤는 목록 없이 상·중·하 3책으로 장책한 의궤이다. 상책은 1679년 9월 12일에 郎善君 李俁, 昌城君 李佖, 海寧君 李伋 등이 올린 上疏가 첫머리에 수록되어 있다. 이 상소는 선원록과 어첩에 착오가 많으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조카가 아들로 되어 있거나 아들이 사위로 되어 있어 부자형제의 질서가 어지럽게 되었고, 어첩에 쓰인 글자가 잘못되어 믿을 만한 것이 없으므로 나라 안의 여러 족보들을 모으고 譜學에 정통한 사람에게 맡겨 고증하여 바로잡게 하자는 것이다. 이 상소를 받은 국왕은 종부시에 계하하였다. 종부시에서는 이 사안에 대해 9월 24일에 계목을 올렸다. 종부시는 선원록을 바로잡기 위한 임시 도감으로 이정청을 설치하자는 건의와 대신들의 의견을 아뢰었고 국왕은 논의대로 시행하라고 윤허하였다. 이에 따라 11월에 ‘璿源錄釐正廳’이 설치되고, 1680년(숙종 6) 1월에 「선원록이정시응행절목」이 마련되면서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되었다. 본 의궤에는 선원록 편찬 체제에 대한 논의도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1680년에 이정된 선원록이 두 가지 측면에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전에는 선원록을 세로로 내려썼으나 이번부터 가로로 6단을 나누어 기록하였다.
둘째, 이전에는 『종친록』과 『유부록』을 나누어 작성하였으나 이번부터 두 책을 합하여 한 책으로 작성하였다. 작성 방식은 嫡庶와 남녀를 구분하고 대군·공주·군·옹주의 순으로 기록하였다.
셋째, 이전에는 6대 내·외손까지 기록하였으나, 이번부터 宗姓은 9대손까지 外派는 6대손까지 기록하여 차별을 두었다. 이러한 변화는 ‘先男後女’와 ‘詳內略外’라는 17세기 사대부의 족보 편찬 체제를 반영한 것이다. 의궤의 상책에는 선원록의 이정을 추진하기 위한 상소와 그에 대한 국왕의 전교, 이정청을 비롯한 여러 관서에서 아뢰는 啓辭 외에 稟目秩, 移文及牒呈秩, 甘結秩이 수록되어 있다. 중책은 一房辨異, 一房稟目秩, 二房辨異, 二房稟目秩을 수록하였다. 각 방의 변이에서는 먼저 담당 낭청과 해당 국왕, 계파를 목록으로 제시한 후 다음 면에 각 파마다 수정한 내용을 서술하였다. 이방품목질 다음에는 雜物秩, 낭청, 서사충의, 서리 등을 기록하였다. 하책에는 三房에서 四房·五房·六房의 변이와 품목질을 수록하였고, 이어서 「各房冒屬自首抄出」이 있다. 「각방모속자수초출」은 선원록에 모속하였던 사람들 중에 자수한 이들의 명단이다.
1680년(숙종 6) 10월 21일에 선원록 50권이 완성되었으나 ‘以庶爲嫡’과 같은 冒錄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정한 선원록을 다시 ‘璿源錄校正廳’을 설치하여 교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선원록을 교정한 과정은 『璿源錄校正廳儀軌』에 상세하게 수록하였다. 모든 이정을 마친 선원록과 어첩은 1680년 11월 9일에 종부시로 옮겨 봉안하였다. 의궤 하책의 마지막 면에는 선원록 이정에 참여한 郎廳 鄭翰周, 都廳 鄭勔·李光迪, 副提調 李敏敍·趙嘉錫, 提調 李俁·李佖·李翊相, 都提調 金壽興이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본 의궤는 조선 후기에 선원록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종친들의 역할과 선원록의 체제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원창애, 「조선 후기 선원보첩류의 편찬체제와 그 성격」, 『藏書閣』 17, 2007.

집필자

조계영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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