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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각수개시형지안(璿源閣修改時形止案)

자료명 선원각수개시형지안(璿源閣修改時形止案) 저자 종부시(宗簿寺) 편(編)
자료명(이칭) 璿源閣修改時形止案 저자(이칭) 宗簿寺(朝鮮) 編
청구기호 K2-3811 MF번호 MF35-615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璿源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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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687(숙종 13년)
· 청구기호 K2-3811
· 마이크로필름 MF35-61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종부시(宗簿寺)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4.1 X 39.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6.5×26.5㎝
· 인장 五品奉使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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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687년(숙종 13) 4월 15일에 종부시직장 李東亨적상산 선원각을 수리한 후에 선원록을 봉안한 사안에 대한 형지안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표제를 따랐다. 표지 장황은 빛바랜 황색 종이에 斜格雜寶 무늬가 있으며, 5침안으로 線裝해놓았다. 표지서명의 우측에는 ‘丁卯四月赤裳山城’이라는 기록이 있고, 좌측에는 ‘康熙二十六年丁卯’라는 기록이 있다.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본문은 烏絲欄에 12行으로 墨書하였다. 제1면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으며, 표지와 본문에 ‘五品奉使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687년 봄에 전라감사 李濡가 장계를 올려 적상산사고와 선원각이 작년 여름 장마로 기와가 부서지고 담이 훼손되어 수리가 필요하다고 보고하였다. 보통 史庫라고 할 때는 실록을 봉안한 실록각을 말하며 史閣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국왕은 전라감사의 장계를 예조에 내렸고 예조는 장계에 근거하여 3월 5일에 계목을 올렸다. 예조는 여름 장마철이 오기 전에 사각과 선원각을 고치기 위해서는 담당 관서인 춘추관종부시의 낭청을 내려보내어 현장 조사를 한 후에 조치할 것을 아뢰어 윤허하였다. 이에 국왕의 명을 받은 종부시는 낭청과 서리 1인에게 말을 주어 내려보내고, 사용할 印信을 요청하였다. 이와 같이 식년의 선원록을 봉안하는 정기적인 사안이 아닐 때에는 선원각이 소재한 곳의 관찰사가 특별한 사안에 따라 장계를 올려 보고하였다.
3월 17일에 종부시직장 이동형은 사조하고 출발하여 23일에 적상산성에 도착하였다. 선원각에 四拜한 후에 무주부사 조태래와 함께 살펴보니 내외로 봉한 자물쇠는 이상이 없었다. 선원각의 기와가 부서진 곳이 많았고 들보 위의 기와가 기울어져 빗물이 흘러들어가 내부의 仰板도 훼손되었고 단확도 더러워지고 바닥에 깔아놓은 地衣도 상하였다. 다행히 선원록은 서가에 봉안하고 油芚으로 덮었기 때문에 훼손되지는 않았다. 선원록을 眞殿에 옮겨 봉안하고 포쇄하였다. 선원각의 기와를 모두 헐고 그중에서 완전한 것만 새 기와와 함께 덮고, 사면의 담은 다 무너져 모두 중축하였다.
4월 15일에 선원록을 본래대로 봉안하고 선원각의 바닥에 까는 지의는 다시 개비하였다. 어첩과 『국조보첩』은 먼저 겹보자기로 싸고 다시 紅紬 보자기로 거듭 쌌다. 이렇게 두 번 싼 어첩과 『국조보첩』은 흑칠한 소궤에 봉안하였는데, 白苧布로 만든 겹주머니에 천궁과 창포 가루인 芎蒲末을 담아 바닥과 위에 두었다. 소궤는 자물쇠로 잠그고 열쇠와 함께 謹封紙를 두르고 着署하였다. 이 소궤를 홍주 겹보자기로 싸고 天字櫃에 봉안하였다. 선원록은 천자문의 순서인 ‘天·地·玄·黃……’의 차례로 궤의 순차를 매겨 봉안하였다. 地字櫃에는 태조의 종친록부터 세종의 유부록까지 32권을 홍주 보자기로 싸고 바닥과 위에 궁포말을 넣은 주머니를 넣고 봉안하였다. 같은 방법으로 중종의 종친록에서 『甲午式年加現錄』까지 31권을 玄字櫃에, 『정유식년종친록』부터 『무오식년유부록』까지 黃字櫃에 봉안하였다. 宇字櫃부터 宙字·洪字·荒字·日字·月字·盈字櫃에는 1680년(숙종 6)에 잘못된 곳을 대대적으로 바로잡은 『선원록』 50권을 나누어 봉안하였다. 영자궤에는 1684년(숙종 10) 『甲子式年璿源加現錄』 4권을 함께 봉안하였다. 천자궤와 마찬가지로 선원록을 봉안한 궤는 모두 근봉하고 착서하였다. 1680년에 선원록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았던 사안을 기록한 의궤인 『釐正廳儀軌』 3권과 『校正廳儀軌』 1권은 흑칠한 中樻에 보관하였다. 이번 선원각을 고친 형지안을 포함하여 20건의 형지안은 흑칠한 소궤에 보관하였다.
이 형지안의 좌목에는 사고참봉李文桂崔潤瑀 2인을 수록한 것으로 보아 당시 2인이 사고를 관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봉 다음으로는 守城將 무주부사 趙泰來, 낭청 통훈대부 종부시직장 李東亨이 수록되었는데 모두 착명서압하였다. 좌목 다음 장에는 僧將 天應과 營吏 李汝栢, 書吏 秦孝建이 수록되었다.
특성 및 가치
 본 형지안은 적상산 선원각을 담당한 전라감사의 狀啓에서부터 종부시의 啓目에 이르기까지, 선원각을 수리하기 위한 문서 행정을 잘 보여주는 형지안이다.

집필자

조계영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