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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사고조사보고서(五臺山史庫調査報告書)

자료명 오대산사고조사보고서(五臺山史庫調査報告書) 저자 궁내부(宮內府) 편(編)
자료명(이칭) 五臺山史庫調査報告書 저자(이칭) 宮內府(朝鮮) 編
청구기호 K2-3774 MF번호 MF35-695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實錄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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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9(융희 3년)
· 청구기호 K2-3774
· 마이크로필름 MF35-69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궁내부(宮內府)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7.0 X 18.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3×16.8㎝
· 인장 閔丙奭印,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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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09년(융희 3) 12월에 오대산사고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이다.
서지사항
내제는 ‘五臺山史庫調査報告書’이다. 표지 장황은 빛바랜 미색 종이에 민무늬이다. 미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앞표지 우측에 ‘隆熙三年(1909)十二月’이 적혀 있다. 본문판식은 朱色인 宮內府用紙에 13행에 맞추어 필사하였다. 본문 첫 면 우측 상단에 부본임을 표시하였다. 본문의 글씨는 초서와 해서가 섞여 있으며, 국한문 혼용이다. 五臺山史庫의 위치와 관련된 지도가 붙어 있다. 권말에는 책 수는 8장 1책이다. 인장은 본문 첫 면에 ‘閔丙奭印’, ‘藏書閣印’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오대산사고를 조사하고 본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은 宮內府事務官 村上龍佶이며, 보고서를 받은 사람은 宮內府大臣 閔丙奭이다. 오대산사고에 대한 조사는 1909년 10월에 실시되었고, 보고서가 제출된 것은 같은 해 12월 8일이다.
본서의 첫머리에는 서론에 해당하는 글이 있는데, 1909년 10월 1일에 서울을 출발해서 10월 20일에 오대산사고에 도착하여 조사를 실시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어 본문에서는 8개의 절로 나누어 오대산사고의 현황을 정리했는데, 각 절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① 史庫의 位置, ② 史庫의 創立, ③ 史庫의 構造, ④ 史庫의 菅守, ⑤ 史庫의 管理費, ⑥ 史庫의 書冊, ⑦ 史庫調査의 經過, ⑧ 史庫의 將來에 대한 意見. 이 중 주목되는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사고의 창립’에서는 사고가 원래 영변묘향산에 있었다가 1606년(선조 39)강원도 원주 獅子山으로 옮겨졌고 다시 오대산으로 이전되어 지금까지 304년이 지났다고 기록하였다. ‘사고의 관수’에서는 월정사에 守護番僧 6명을 두어서 관리하고 있음을 밝히고, 당시 사고에 소속된 수호번승들의 이름과 나이를 기록하였다. 또 ‘사고의 관리비’에는 內閣에서 수호번승의 급료와 사고 건물 수리비 등의 관리 비용을 교부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사고의 장래에 대한 의견’에서는 월정사의 쇠퇴로 사고 관리에 소홀함이 나타나며 사고 주변에 숲이 우거지고 火田이 성행하여 화재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 다음, 사고를 한성으로 옮겨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보고서 뒤에는 오대산사고의 구조를 그린 도면 4장이 별첨되어 있다. 제1도는 오대산사고와 인근 사찰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이고, 제2도는 오대산사고 전체의 구조를 그린 평면도이다. 제3도는 史閣·璿源寶閣·靈鑑寺 등 각 건물의 평면도를 따로 그린 것이며, 제4도는 월정사의 평면도이다.
특성 및 가치
 20세기 초반 오대산사고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편, 『史庫址調査報告書』, 국사편찬위원회, 1986.
裵賢淑, 『朝鮮實錄硏究序說』, 태일사, 2002.

집필자

강문식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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