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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실록포쇄형지안(赤裳山實錄曝曬形止案)

자료명 적상산실록포쇄형지안(赤裳山實錄曝曬形止案) 저자 춘추관(春秋館) 편(編)
자료명(이칭) 실록포쇄후형지안(實錄曝曬後形止案) , 實錄曝쇄形止案 저자(이칭) 春秋館(朝鮮)編 , 춘추관(春秋館)
청구기호 K2-3764 MF번호 MF35-617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實錄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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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00(숙종 26년)
· 청구기호 K2-3764
· 마이크로필름 MF35-617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춘추관(春秋館)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2.2 X 30.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6.0×26.0㎝
· 인장 六品奉使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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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00년(숙종 26) 3월에 적상산사고 소장 자료를 포쇄한 후 작성한 형지안이다.
서지사항
내제는 ‘康熙三十九年三月 日 赤裳山實錄曝曬形止案’이다. 표지 장황은 빛바랜 황색 종이에 돌립무늬 바탕에 매화 문양이 있는 것이고, 홍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표지 우측에 ‘康熙三十九年(1700)庚辰三月日’, ‘史庫上’이 적혀 있다. 본문은 12행에 맞추어 烏絲欄을 직접 그은 것이며 어미는 없다. 본문의 글씨는 해서로 적어놓았다. 본문 마지막에 ‘朝奉大夫行藝文館檢閱兼春秋館記事官 臣尹[수결]’이라고 적혀 있다. 종이는 두꺼운 壯紙이며 책 수는 36장 1책이다. 인장은 본문 첫 면에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각 면마다 ‘六品奉使之印’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내제는 본 형지안이 작성된 시기와 작성 경위를 확인할 수 있다. 본서의 내용은 실록 소장 현황을 정리한 부분과 일반서적의 소장 상황을 기록한 「書冊秩」 등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실록 현황을 보면, 『太祖實錄』부터 『顯宗改修實錄』까지 적상산사고에 소장된 실록의 내역이 실록 궤별로 정리되어 있다. 당시 사고에 소장된 실록 궤는 총 36개이며, 1번부터 차례로 번호가 부여되었다. 이 중 제1~13궤에는 임진왜란 이후 재간행된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이 담겨 있고, 제14궤부터 선조 이후의 실록이 보관되었다. 『宣祖實錄』부터는 전체 실록궤의 연번과 함께 각 왕대별 실록궤의 연번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형지안에는 실록궤별로 소장 실록의 각 책별 卷次가 기록되어 있다. 제1궤의 『태조실록』을 예로 들면, 첫째 줄에 ‘第一之三’, 둘째 줄에 ‘第四之九’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태조실록』 제1책에는 제1~3권이, 제2책에는 제4~9권이 실려 있음을 의미한다. 본 형지안에는 1698년端宗 復位 상황이 반영되어 ‘魯山君日記’가 ‘端宗實錄’으로 수정되었다. 반면, 定宗은 여전히 ‘恭定大王’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書冊秩」에는 적상산사고에 소장된 일반서적의 서명과 책 수가 각 궤별로 정리되어 있다. 일반서적은 총 13개의 궤에 담겨 보관되었으며, 儀軌·形止案·御製類·經書·史書·儀禮書·文學書·文集·醫書·兵書 등 다양한 서적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13궤의 현황 다음에는 『列聖御製』 4책과 御筆 1帖이 별도의 궤에 담겨 上庫에 보관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의궤와 형지안은 서명 아래에 작은 글씨로 편찬 연대가 부기되어 있으며, 일부 서적들은 적상산사고에 입고된 시기가 기록되어 있다. 17세기의 형지안들과 비교해볼 때, 전체적으로 각 궤의 보관 서적들이 크게 달라졌음이 확인된다. 특히 17세기까지 일반서적 제1궤에 있었던 『綱目』이 제9궤로, 제6궤에 있었던 『高麗史』가 제10궤로 옮겨졌고, 대신 의궤류가 제1~3궤에 보관되었다. 이는 18세기에 들어 적상산사고의 일반서적 관리 체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는 당시 적상산사고에 파견된 史官이 기록되어 있다. 『承政院日記』 숙종 26년 3월 1일 기사에 “檢閱 尹志和가 실록을 포쇄하기 위해 茂朱로 갔다.”는 내용이 있어서 본 형지안을 작성한 사관 ‘尹’이 윤지화임을 확인하였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적상산사고의 장서 현황 및 중앙정부의 사고 관리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김정미, 「장서각 소장 『적상산사고실록형지안』 연구」, 『서지학보』 38, 2011.
안미경, 「17세기 적상산사고 『실록형지안』에 관한 연구-일반서책을 중심으로」, 『서지학연구』 55, 2013.

집필자

강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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