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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실록포쇄시형지안(赤裳山實錄曝曬時形止案)

자료명 적상산실록포쇄시형지안(赤裳山實錄曝曬時形止案) 저자 춘추관(春秋館) 편(編)
자료명(이칭) 實錄曝쇄時形止案: , 실록포쇄시형지안:적상산(實錄曝曬時形止案:赤裳山) 저자(이칭) 春秋館(朝鮮) 編 , 춘추관(春秋館)
청구기호 K2-3753 MF번호 MF35-61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實錄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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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18(숙종 44년)
· 청구기호 K2-3753
· 마이크로필름 MF35-61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춘추관(春秋館)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5.6 X 30.8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6.6×25.4㎝
· 인장 五品奉使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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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18년(숙종 44) 10월에 적상산사고 소장 자료를 포쇄한 후 작성한 형지안이다.
서지사항
내제는 ‘康熙五十七年十月 日 赤裳山實錄曝曬時形止案’이다. 표지는 빛바랜 황색 종이에 홍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표지 우측에 ‘戊戌九月日’, ‘赤裳上’이 적혀 있다. 본문은 12행에 맞추어 烏絲欄을 직접 그은 것이며 어미는 없다. 본문의 글씨는 해서로 적어놓았다. 본문에는 ‘丙申九月初五日史庫下莊書冊朽破置付’가 적혀 있는 첨지가 붙어 있다. 본문 마지막에 ‘務功郞藝文館待敎兼春秋館記事官 臣李[수결]’라고 적혀 있다. 종이는 저지이며 책 수는 38장 1책이다. 인장은 본문 첫 면에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각 면마다 ‘五品奉使之印’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의 내용은 실록 소장 현황을 정리한 부분과 일반서적의 소장 상황을 기록한 「書冊秩」 등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실록 현황을 보면, 『太祖實錄』부터 『顯宗改修實錄』까지 각 책의 卷次가 실록궤별로 정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제1궤의 『태조실록』은 첫째 줄에 “第一之三”, 둘째 줄에 “第四之九”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첫째 줄은 『태조실록』 제1책에 권1부터 권3까지 실려 있다는 뜻이고, 둘째 줄은 마찬가지로 제2책에 권4부터 권9까지 수록되었음을 표시한 것이다. 당시 사고에 소장된 실록궤는 총 36개로, 1번부터 차례로 연번이 붙어 있었다. 이 중 제1~13궤에는 임진왜란 이후 재간행된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이 담겨 있고, 제14궤부터 선조 이후의 실록이 보관되었다. 『선조실록』부터는 전체 실록궤의 연번과 함께 각 왕대별 실록궤 연번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또 정종단종에게 廟號가 올려진 상황이 반영되어 각각 ‘定宗大王’, ‘端宗大王’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단종 복위 후 1704년(숙종 30)에 편찬된 『端宗實錄附錄』도 『단종실록』 부분에 추가되어 있다. 실록 현황의 마지막 부분에는 소장 실록의 총 책 수가 547책임이 기재되어 있다.
다음으로 「書冊秩」에는 적상산사고에 소장된 일반서적의 서명과 책 수가 각 궤별로 정리되어 있다. 일반서적은 총 15개의 궤에 담겨 보관되었는데, 儀軌·形止案·御製類·經書·史書·儀禮書·文學書·文集·醫書·兵書 등의 다양한 서적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의궤와 형지안은 서명 아래에 작은 글씨로 편찬 연대가 부기되어 있으며, 일부 서적들은 적상산사고에 입고된 시기나 책의 손상 여부 등이 기록되어 있다. 2년 전인 1716년에 작성된 『赤裳山實錄曝曬時形止案』(K2-3752)과 비교해볼 때 『朱文抄選』 1종이 제14궤에 추가되어 있는데, 1718년 10월 포쇄 시 사고에 새로 들어왔다는 내용이 부기되어 있다. 한편 17세기까지 일반서적 제1궤에 보관되었던 『綱目』이 제9궤로, 제6궤에 보관되었던 『高麗史』가 제10궤로 옮겨졌고, 대신 의궤류가 제1~3궤에 보관되었다. 이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적상산사고의 일반서적 관리 체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책질」의 마지막 부분에는 빈 서적궤 1개가 적상산사고에 들어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장에는 당시 적상산사고에 파견되어 포쇄를 담당했던 史官이 기록되어 있다. 『承政院日記』 1718년 윤8월부터 1719년 2월까지 기사에서 李箕鎭待敎로 재직했음이 확인되므로, 본 형지안을 작성한 사관 ‘李’은 이기진일 것으로 생각된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적상산사고의 장서 현황 및 중앙정부의 사고 관리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赤裳山實錄曝曬時形止案』(K2-3752)
김정미, 「장서각 소장 『적상산사고실록형지안』 연구」, 『서지학보』 38, 2011.
안미경, 「17세기 적상산사고 『실록형지안』에 관한 연구-일반서책을 중심으로」, 『서지학연구』 55, 2013.

집필자

강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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