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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보감감인청의궤(國朝寶鑑監印廳儀軌)

자료명 국조보감감인청의궤(國朝寶鑑監印廳儀軌) 저자 국조보감감인청(國朝寶鑑監印廳) 편(編)
자료명(이칭) [國朝寶鑑]監印廳儀軌 저자(이칭) 國朝寶鑑監印廳(朝鮮) 編
청구기호 K2-3686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寶鑑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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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48(헌종 14년)
· 청구기호 K2-368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국조보감감인청(國朝寶鑑監印廳)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7.0 X 33.8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철장(鐵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2.2×25.4㎝
· 인장 奉使之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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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47년(헌종 13) 2월부터 1848년(헌종 14) 10월까지 행해졌던 正祖, 純祖, 翼宗 三代의 『國朝寶鑑』의 纂輯부터 監印, 奉安까지 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의궤이다.
서지사항
내제는 ‘監印廳儀軌’이고, 표지 서명은 ‘國朝寶鑑監印廳儀軌’이며, 서근제는 ‘道光二十八年 戊申寶鑑監印’이다. 앞표지 우측에 ‘道光二十八年戊申十月日’, ‘宗廟署上’이 적혀 있다. 표지 장황은 갈색 면직물을 사용하였다. 장정은 현재 붉은 끈을 임시적으로 묶어놓았는데, 원래 三針眼의 鐵裝으로 보인다. 본문의 판식은 12행의 烏絲欄, 四周單邊, 上內向二葉花紋魚尾인 인찰공책지를 사용하였다. 글씨는 반듯한 楷書로 썼다. 중간에 채색한 삽도가 있는데, 이곳은 괘선이 없거나 붓으로 직접 그었다. 지질은 품질은 좋으나 비교적 얇은 楮注紙를 사용하였다. 책 수는 1책 161장이다. 인장은 본문의 각 면마다 안쪽 면에 ‘奉使之印’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헌종 연간 편찬본 외에 2본이 더 있다. 먼저 1783년(정조 7) 편찬본은 『英祖實錄』의 편찬이 끝난 직후 實錄보다 간편히 볼 수 있는 寶鑑 편찬의 필요성이 正祖에 의해 먼저 제기되고 기왕에 있었던 太祖·太宗·世宗·文宗·宣祖·肅宗의 六朝寶鑑을 보충하는 英祖까지의 十三朝寶鑑 편찬이 결정되어 纂輯 및 校正이 추진된 상황을 채색 반차도와 함께 상세히 기록하였다. 1909년(융희 3) 편찬본은 종묘 15실과 영녕전 7실의 보감을 改編하였고, 憲宗, 哲宗 兩朝의 보감을 새로 편찬한 전말을 기록하고 그림이 아닌 文班次圖로 進書 시와 종묘 봉안 행렬을 묘사하였다.
본서는 시일, 찬집청좌목, 계사(附 承傳), 감결, 감인청좌목, 계사(附 承傳), 어제서문, 箋文, 총서, 범례, 발문, 卷帙, 재용(附 料布盤纏式), 마련, 도설, 封裏式, 이문, 감결, 來關, 禮關, 의주, 상전, 의궤(계사, 승전, 전문 幷附), 이문, 실입, 감결, 내관, 예관, 工匠, 반차도로 구성되었다.
「時日」에는 1847년 2월 1일 찬집당상과 낭청 啓下, 당시 찬집청은 주자소에 설행하였다. 2월 29일 주자소에서 회동, 3월 1일 정조 연간 『일성록』을 내각으로부터 옮기고, 3월 23일 정조 연간 『승정원일기』를 승정원에서 옮겨 왔다. 5월 2일 순조 연간 『일성록』을 내각에서 옮기고, 6월 21일 『翼宗代聽時日錄』, 『승정원일기』를 내각에서 옮겨 왔다. 11월 17일 교정낭청을 계하하고, 11월 20일 감인청을 校書館으로 이설하였다. 11월 21일 교정 작업을시작하고, 1875년(고종 12) 1월 19일 繕寫郎廳을 추가로 差下하였으며, 감인당상과 낭청을 계하하였다. 2월 6일 감인당낭이 교서관에서 회동하였고, 종묘를 봉심하였다. 2월 6일 감인청 사목을 계하하였고, 2월 9일 어제 서문을 내렸다. 7월 16일 어제 서문을 내각에서 교열하고 7월 19일 箋文, 跋文의 草本을 啓下하였다. 8월 7일 정조 연간 보감의 교정본을 入啓하였고, 8월 11일 開印을 시작하였다. 8월 25일 순조익종의 보감 교정본과 總敍, 범례 초본을 입계하였다. 8월 27일 종묘를 재차 봉심하였고, 9월 26일 三朝寶鑑을 封裏하였다. 이날 進書班次圖와 奉詣太廟班次圖를 입계하였다. 8월 30일 進書習儀와 親上習儀를 인정전에서 행례하고 奉詣太廟習儀를 인정전에서 敦寧府까지 진행하였다. 10월 3일 三朝寶鑑을 進書하고, 이날 삼조보감 奉安本을 인정전에 權安하였다. 10월 5일 봉안한 보감을 종묘에 가져왔고, 10월 6일 삼조보감을 태묘에 친상하였다. 당시 태묘 각실에 봉안된 『국조보감』 卷帙은 正宗朝 3책, 純宗朝 2책, 翼宗代理 1책이었다. 10월 8일 총재관 이하 別單을 서입하고, 10월 24일 삼조보감 초본을 北營에서 洗草하고 宣醞 시 進參人員 별단을 書啓하였다. 10월 25일 정조가 進謝箋文을 春塘臺에서 친히 받았다.
「座目」은 纂輯廳 좌목과 監印廳 좌목이 함께 실렸다. 찬집청 摠裁大臣은 趙寅永, 校正大臣은 鄭元容, 校正堂上은 洪敬謨 외 2인, 纂輯堂上은 金蘭淳 외 5인, 監印堂上 行戶曹判書 徐憙淳 외 2인 등이 선임되었다. 감인청 총재대신은 조인영, 당상은 徐憙淳 외 2인, 도청낭청은 趙然昌, 감동낭청은 任百淵 외 2인이었다.
「도설」에는 3책 奉安櫃 1부, 2책 봉안궤 1부, 1책 봉안궤 1부, 進上冊櫃 1부, 讀冊床 1부 등을 그려 당시 『국조보감』 봉안과 친상 시에 사용된 각종 궤와 상 등을 제작한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감인청 의궤사목에 의하면, 당시 의궤는 11건이 제작되어 內閣에 내입되고, 校書館, 4처의 史庫, 춘추관, 종묘서, 의정부, 예조에 분상되었다.
권미에는 헌종에게 삼조보감을 올리기 위해 인정전까지 이동하는 행렬을 9면에 묘사한 〈國朝寶鑑進書時班次圖〉와 삼조보감을 종묘에 봉안하는 행렬을 11면에 묘사한 〈國朝寶鑑宗廟奉安班次圖〉가 있다. 맨 마지막 면에는 총재관 조인영을 비롯하여 당상, 도청과 낭청의 수결이 차례로 보인다. 의궤 前排用還秩에 당시 반차도 印本 24개를 빌려 쓰고 돌려주었다는 기록을 통해 본서의 의궤는 기존 의궤에 사용된 인본을 사용하여 찍은 후 채색한 것을 알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정조 연간 太祖부터 英祖에 이르는 『國朝寶鑑』 편찬에 이어 헌종 연간 진행된 정조, 순조, 익종 삼조의 보감을 편찬하는 과정과 종묘 봉안까지 의례를 상술한 점에서 의미 있는 자료이다. 『國朝寶鑑監印廳儀軌』는 본서 외에도 1783년1909년에 편찬된 것이 장서각규장각에 있어 체제와 내용을 비교할 수 있다.

집필자

정은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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