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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흥현공사초등록(義興縣公事草謄錄)

자료명 의흥현공사초등록(義興縣公事草謄錄) 저자 의흥현(義興縣) 편(編)
자료명(이칭) 의흥현공사초등록(義興縣公事草謄錄n1-1책) , 義興縣公事草謄錄 저자(이칭) 의흥현(조선) 편(義興縣(朝鮮) 編) , 義興縣(朝鮮) 編
청구기호 K2-3661 MF번호 MF35-40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官衙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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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00(숙종 26년)
· 청구기호 K2-3661
· 마이크로필름 MF35-40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의흥현(義興縣)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6.7~27.4 X 22.4~25.4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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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00년(숙종 26) 의흥현감 朴聖漢이 재임하던 당시 의흥현의 공문 기록을 모아놓은 등록이다.
서지사항
내제는 ‘庚辰三月十三日義興縣公事草謄錄’이며, 표제는 ‘義興縣公事’이다. 표지 장황은 회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는 것이고, 주황색 실로 선장하였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백지에 8~10행 21~25자에 맞추어 해서로 작성하였다. 지질은 일반적인 楮紙를 사용하였다. 책 수는 64장 1책이다. 인장은 본문 첫 면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목차는 별도로 수록하지 않았고 본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1700년 3월 13일자 기사인 의흥현의 환곡을 분급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문서를 시작으로 그해 11월 17일자 기사인 의흥현감 사직 장계로 끝난다. 본문 문서는 모두 44개의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44건의 문서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환곡과 관련된 문서 6건, 身役과 관련된 문서가 5건, 農形 보고와 관련된 문서가 8건 등이다. 그리고 이 외에도 山訟과 관련된 문서 兼官과 관련된 문서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의흥현 공사와 관련된 문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산산성과 관련된 문서들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가산산성칠곡에 소재하고 있지만 가산산성의흥현 소관 창고인 山倉이 있어서 창고가 오래되고 비가 새면서 보관 중인 軍餉穀에 문제가 발생하게 될 소지가 많았다. 그러므로 산창 수리 및 환곡을 개색하는 것이 의흥현 입장에서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의성현감의 공석으로 인하여 兼官이 되었을 때 吏胥들의 농간을 바로잡도록 하는 문제, 의흥의 인근지역인 안동, 예천, 군위 등에서 발생한 산송이나 전답 추심에 대한 재판, 歲抄가 진행될 때 의흥현으로 온 공조장인의 徵捧 문제, 환곡을 상환하는 문제, 농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보고, 절에 있는 승려들을 추쇄하는 문제, 국가에 상납하는 진상품이 의흥현을 지나갈 때 路文을 발급하는 문제, 路文 발급 과정에서 상납 관원들의 근무 태만 문제,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처리 문제, 남해안 포구인 多大浦豆毛浦에 납부하는 신역을 가지고 가다가 양산에서 도적에게 빼앗기고 인명 피해까지 입은 문제에 대한 처리 등과 같이 조선 후기 군현에서 일어나는 일상사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꽤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현감 자신과 직속상관이었던 경상감사 이세재와의 문제였다. 이 둘은 世誼가 있었던 사이였다. 결국 그는 부임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사직서를 올렸으나 감사에 의해서 반려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결국 그는 부임한 지 8개월여 만인 11월 17일 감사가 사직을 받아들여 국왕에게 장계를 올림으로써 체직되었다.
특성 및 가치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걸친 의흥현 공사는 당시 지방관의 업무 내용과 지방민들이 어떠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지방 공문 자료인 보첩류가 대부분 18세기 후반 이후에 집중되어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이전 시기 지방사회의 공적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노혜경, 『朝鮮後期 守令 行政의 實際』, 혜안, 2006.
이선희, 「『愚谷日記』를 통해 본 17세기 수령의 일상업무」, 『역사민속학』18, 2004.
이선희, 『조선 후기 수령의 출퇴근과 근무방식」, 『史學硏究』92, 2008.

집필자

박범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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