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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신속삼강행실찬집청의궤(東國新續三綱行實撰集廳儀軌)

자료명 동국신속삼강행실찬집청의궤(東國新續三綱行實撰集廳儀軌) 저자 삼강행실찬집청(三綱行實撰集廳) 편(編)
자료명(이칭) 동국신속삼강항실찬집청의궤(東國新續三綱行實撰集廳儀軌n1-1책) , 東國新續三綱行實撰集廳儀軌 저자(이칭) 삼강항실찬청(조선) 편(三綱行實撰廳(朝鮮) 編) , 三綱行實撰廳(朝鮮) 編
청구기호 K2-3641 MF번호 MF35-545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官衙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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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616(광해군 8년)
· 청구기호 K2-3641
· 마이크로필름 MF35-54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삼강행실찬집청(三綱行實撰集廳)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3.3 X 33.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4.7×27.4㎝
· 인장 奉使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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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東國新續三綱行實圖』 편찬을 위해 조직된 撰集廳에서 1612년(광해군 4) 5월 21일부터 1616년(광해군 8) 5월 초까지 4년에 걸친 편찬 경위를 기록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내제는 ‘萬曆四十四年三月日東國新續三綱行實撰集廳儀軌’이고, 표제와 서근제는 ‘東國新續三綱行實撰集廳儀軌’이다. 앞표지 우측에 ‘萬曆四十四年丙子三月日’, ‘光海八年’이 적혀 있다. 표지 장황은 大正七年에 개장한 것으로, 민무늬 갈색 마분지를 사용하였고, 붉은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본문의 판식은 12행의 烏絲欄, 四周雙邊,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인 인찰공책지를 사용하였다. 글씨는 楷書로 썼다. 지질은 두께가 비교적 두꺼운 楮紙를 사용하였다. 책 수는 1책 113장이다. 인장은 본문 첫 면에 ‘李王家圖書之章’,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을 날인하였고, 각 면마다 안쪽 이음새에 ‘奉使之印’을 날인해놓았다.
체제 및 내용
三綱行實圖』는 1431년(세종 13) 集賢殿副提學 偰循 등이 王命에 의해 우리나라와 中國에서 忠孝烈 三綱에 탁월한 105인을 뽑아 간행한 이래, 그 속편으로 1514년(중종 9) 대제학 申用漑 등이 왕명으로 『續三綱行實圖』를 간행하였다. 이후 1617년(광해군 9) 柳根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신라부터 朝鮮 光海君朝에 이르기까지 三綱의 모범이 될 만한 忠臣·孝子·烈女를 뽑아 그 行實을 기록한 책이다.
본서는 별도의 목차는 없지만, 내용은 啓辭, 牒呈, 甘結, 印出 관련 내용을 차례로 기술하였다. 광해군1612년(광해군 4) 5월 21일 임진왜란 이후 문란해진 사회 기풍을 회복하고자 효자, 충신, 열녀 등의 행실을 감정하여 반포할 일을 예조에서 의논하여 조속히 시행하도록 비망기를 내렸다. 이에 5월 28일 예조에서 각 도 각부에 안배하여 旌門, 賞職, 復戶 등의 일을 거행하고 있음을 보고하고 만약 이 일을 책으로 만들면 續三綱行實로 만세에 전하게 될 것이나 圖讚의 수가 방대하여 선택이 불가피하고 讚詩, 圖畫, 書後의 일로 인한 일을 홍문관에 의논할 것을 보고하였다. 이에 홍문관에서는 도찬하여 반포하여 고인의 행적을 흠양할 것과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여 관원을 선임하고, 행적의 자료를 수집할 것을 보고하였다. 1614년(광해군 6) 1월 27일 예조에서 홍문관으로부터 계사를 올려 임란 이후 효자, 충신, 열녀전의 圖畫를 모집하여 간행하는 일과 6월 5일 이조에서 삼강행실찬집청도제조제조, 낭청 등의 망단자를 올렸다. 7월 5일 삼강행실찬집청태평관에 설치하였다. 7월 11일 찬집청에서 효자, 충신, 열녀 등 旌門은 上通은 775인, 中下는 348인으로 총 1,123인의 도형을 그리고 記實과 시찬은 언해로 각 1인에 1장의 분량으로 1책을 100장으로 추산하더라도 卷秩이 11~12권이 되어 어려움이 있으니 『신속삼강행실』의 편찬을 미룰 것을 보고하였다. 7월 16일 찬청에서 各張 전후면에 2인을 기록하되 각 면의 제1행에 성명을 적고 2층으로 나누어 제1층은 記實, 제2층은 諺解로 정리하고 외방에 나누어 보내 각출하게 하면 1~2개월이면 마칠 것이지만, 만약 도형을 그린다면 千板 정도의 물력이 필요하다고 보고하였다. 7월 19일에는 시찬의 진부함과 번거로움을 들어 생략할 것을 보고하였다. 1614년 冊使의 왕래로 停罷되었던 찬집청을 1615년(광해군 7) 1월 5일 복설하고 掌樂院으로 移設하였다.
당시 도화의 일은 화사의 솜씨가 졸렬하면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1431년 삼강행실의 도화도 安堅의 필로 알려져 있다며, 李澄, 李信欽, 金水雲, 金信豪 등 선화자에게 맡겨졌다. 전국 각 도 각 읍에서 충효열 삼강의 일을 成冊하여 올린 것과 『동국여지승람』을 토대로 10월 6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전17권이 완성되었는데, 매권은 90여 편으로 총 1,500여 장에 이르렀다. 도화는 4개월여에 걸쳐 일을 마쳤다. 수정 과정에서 광해군은 조종의 묘호와 존호를 舊例에 의거하여 수정하도록 하였다. 또한 누락된 鄭期遠 등 3인의 事跡을 충신조에 추록하고, 金千鎰 등을 충신의 대열에 수록하게 하였다. 또한 李大元·李舜臣·元均·李億祺·崔湖·李福男·任鉉 등과 부산첨사 鄭撥宋象賢 등 나라를 위해 순국한 사람들도 수록하도록 하였다. 한편 姜壽男과 같이 사망했더라도 陣中에서 항절한 사적이 없는 이들은 수록을 재고할 것을 명하였다. 이를 통해 광해군의 충신 기준에 대한 엄중함을 볼 수 있다.
1616년(광해군 8) 2월 6일 찬집청에서 찬집을 마치니 광해군은 新撰 17권, 舊撰 1권을 합쳐 총 18권을 校正하고 改畵하도록 하고, 400건을 印出하였다. 『동국신속삼강행실』 400건의 刊刻은 경상도, 전라도, 공청도, 황해도, 평안도 등 5도에서 나누어 인출하였고, 그림이 결실된 곳은 畫史 李應福에게 改畵한 후에 보내고, 황해도, 평안도는 善畫人 李彦忠을 차송하였다.
그 뒤로 「東國三綱行實傳目錄」과 「東國續三綱行實傳目錄」에는 新羅, 高麗, 百濟, 本國(朝鮮)으로, 東國新續三綱行實傳目錄에는 조선에만 한정하여 효자, 충신, 열녀의 명단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이어 「東國新續三綱行實官員職名」에는 도제조 奇自獻, 鄭仁弘, 鄭昌衍, 제조 柳根, 李爾瞻, 宋諄, 李惺 이하 부제조 韓纘男, 도청 3명, 낭청 17명의 이름이 차례로 수록되었다. 사자관은 이희철 등 6명, 화원은 김수운, 이신흠, 김신호, 이징, 韓德壽, 李弘虬, 이응복, 柳成業 등 8명, 唱準 2명, 서리 5명, 고직 1명, 사령 5명의 명단을 기록하였고, 권미에는 부제조 한찬남, 도청 朴鼎吉, 낭청 辛義立의 수결이 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의 사회적 기풍을 확립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세부적으로 1614년(광해군 6)에 설치된 찬집청에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간행을 위한 편집 방법, 詩讚의 게재 여부, 삽도를 위해 필요한 화원의 수급, 초고본에 실린 祖宗의 廟號 문제 등 다양한 논의와 찬집 후 인쇄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찬집청의궤』는 장서각에 소장된 본서 외에도 태백산 사고(奎 14207), 오대산 사고(奎 14208), 의정부(奎 14936)에서 각각 소장했던 것이 규장각에 전하여 참조할 수 있다.

집필자

정은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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