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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영건도감의궤(昌德宮營建都監儀軌)

자료명 창덕궁영건도감의궤(昌德宮營建都監儀軌) 저자 창덕궁영건도감(昌德宮營建都監) 편(編)
자료명(이칭) 창덕궁영건도감의궤(昌德宮營建都監儀軌n1-1책) , 昌德宮營建都監儀軌 저자(이칭) , 戶曹(朝鮮) 編 , 호조(조선) 편(戶曹(朝鮮) 編)
청구기호 K2-3600 MF번호 MF35-55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工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기록유산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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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서비스분류 국가문화재
· 작성시기 1834(순조 34년)
· 청구기호 K2-3600
· 마이크로필름 MF35-55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창덕궁영건도감(昌德宮營建都監)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4.2 X 32.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3.0×26.0㎝
· 인장 戶曹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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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33년(순조 33) 10월부터 1834년(순조 34) 9월까지 昌德宮 영건의 전말을 기록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표제와 권수제는 ‘昌德宮營建都監儀軌’이다. 서근제는 ‘昌德宮營建都監儀軌’이고, 옆에 ‘大造殿 全 純祖’라고 표기하였다. 표지 장황은 민무늬 짙은 朱色 표지를 사용하였다. 서명은 표지에 직접 墨書하여 線裝하였다. 표지 우측에 ‘道光十三年癸巳十月日 純祖三十三年’이라 기재되어 있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單邊에 上內向二葉花紋魚尾인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다. 字數는 12行 24字이다. 책 수는 1冊 135張이고,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에 〈大造殿〉, 〈澄光樓〉를 비롯한 여러 장의 圖面이 있다. 각 장을 배접하여 제책하였다. 본문 마지막에 ‘提調輔國崇祿大夫行判中樞府事兼戶曹判書臣趙[수결]’가 기록되어 있다. 뒤표지 이면 우측 하단에 ‘大正八年一月日改修’라 기록하고 있다. 인장은 제1면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고, 우측 하단에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을 날인하였다. 제1면부터 각 면마다 ‘戶曹之印’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1833년(순조 33) 10월 17일 창덕궁에서 화재가 나서 대조전희정당을 비롯한 징광루, 옥화당, 양심각 등이 모두 失火되었다. 이에 창덕궁 전각의 중건을 위해 꾸려진 영건도감의 일을 기술한 것이 바로 본서이다. 본서는 좌목, 시일, 圖形, 承傳(附 上樑文儀註), 物力區劃, 移文, 來關, 稟目(附 式例), 감결, 實入, 상전, 공장, 의궤 순서로 구성되었다.
「시일」에 의하면 1833년 10월 27일 治木의 일을 시작하였고, 10월 28일 터를 닦았다. 11월 15일 定礎하였고, 11월 26일 창덕궁 大造殿, 熙政堂, 澄光樓의 기둥을 세웠다. 12월 4일 대조전, 희정당, 징광루의 上樑을 하였고, 1834년(순조 34) 9월 28일 일을 마치고 草記를 올렸다.
「좌목」은 제조趙萬永, 낭청은 李衡在, 李穆遠을 비롯하여 별간역과 看役裨將, 都裨將, 비장, 각소 비장, 衛將, 計士, 書吏, 庫直, 사령, 使喚, 文書直, 私庫直, 官使喚, 선공감 匠人色 書員, 別工作, 書員 등의 이름을 나열하였다.
「도형」은 대조전, 징광루, 양심각, 희정당 등의 正面 건축도가 차례로 필사되었다. 「승전」은 1833년 10월 17일 병조에서 창덕궁 실화 상황을 보고한 것부터 비변사, 영건도감에서 보고한 내용과 그에 따른 순조의 하교, 전명 등이 자세하고, 그 뒤에는 11월 13일 창덕궁 각 전당 중건 시 희정당 상량문 제술관은 洪奭周, 대조전 상량문 제술관은 朴宗薰, 징광루 상량문 제술관은 李止淵으로 정해져 그들이 찬한 상량문과 上樑儀가 상술되었다.
「營建物力區劃數」는 영남관동, 四都, 강화, 화성, 關西, 병조, 惠廳, 금위영, 어영청, 훈련도감 등에서 창덕궁의 영건을 위해 올린 錢 18만 2,000냥의 분담 상황을 각각 적었다.
「移文」은 창덕궁 영건물력 구획과 비변사 草記, 청덕궁영건소 物力 소용의 보고 내용을 相考한 후 국왕이 재가한 내용을 기술하였고, 「來關」은 三道統制使, 황해도관찰사, 경상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가 도감에 상고하게 하는 일을 접수한 관문이다. 「實入」은 대조전, 희정당, 興福軒, 隆慶軒, 淸香閣, 慶極門, 協陽門, 同春門, 曜輝門, 수라간 등의 영건에 소용된 각종 물품을 나열하였다. 「상전」은 1834년 10월 창덕궁영건도감제조와 낭청 이하 상량문 제술관, 서사관, 각 殿樓 현판 서사관, 별간역을 비롯하여 木手邊首, 목수, 석수, 船匠, 개와장 등 각색 장인, 화원 장준량 등 24인, 화사 이재관 등 38인 등에게 차등 있게 賞賜하였다. 「工匠」에는 木手, 船匠, 화원, 외방화원, 石手, 大引鉅匠, 小引鉅匠, 歧鉅匠, 乭鉅匠, 假漆匠, 조각장, 木鞋匠, 冶匠, 蓋瓦匠, 泥匠, 鞍子匠, 철망장, 付金匠, 기계장, 朴排匠, 도배장, 각수장, 小木匠, 眞漆匠 등의 명단이 상세하다.
당시 의궤는 8건이 제작되어 규장각, 호조, 예조, 춘추관과 4처의 사고에 각 1건씩 분상되었다. 권미에는 제조 호조판서 조만영의 수결과 낭청 호조정랑 이형재, 이목원 대신 별간역 洪應爕의 수결이 있는 점이 의문이다.
특성 및 가치
 1833년 10월 17일 창덕궁 화재 후 燒失된 전각의 영건 과정에서 논의와 관서별로 왕래한 문서, 소용된 물품, 물력의 구획, 영건에 참여한 모든 인물의 명단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사료이다. 본서는 1647년 『창덕궁수리도감의궤』(K2-3599), 1657년 『창덕궁만수전수리도감의궤』(K2-3598) 등과 함께 창덕궁 건축 수리와 관련된 의궤 자료와 함께 참고할 수 있다.

집필자

정은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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