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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단준경묘영경묘영건청의궤(肇慶壇濬慶墓永慶墓營建廳儀軌)

자료명 조경단준경묘영경묘영건청의궤(肇慶壇濬慶墓永慶墓營建廳儀軌) 저자 궁내부장례원(宮內府掌禮院) 편(編)
자료명(이칭) 조경단준경묘영경묘영건청의궤(肇慶壇濬慶墓永慶墓營建廳儀軌n1-2책) , 肇慶壇濬慶墓永慶墓營建廳儀軌 저자(이칭) 영건청(조선) 편(營建廳(朝鮮) 編) , 營建廳(朝鮮) 編
청구기호 K2-3581 MF번호 MF35-55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工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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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0(광무 4년)
· 청구기호 K2-3581
· 마이크로필름 MF35-55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궁내부장례원(宮內府掌禮院)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9.8 X 27.1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7.4×21.0㎝
· 인장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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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00년(광무 4) 掌禮院에서 전주肇慶壇, 삼척濬慶墓, 永慶墓를 영건한 전말을 기록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표제와 권수제, 서근제는 ‘肇慶壇濬慶墓永慶墓營建廳儀軌’이다. 서근제에 ‘壇所 上’, ‘兩墓所 下’가 각각 표기되어 있다. 표지 장황은 민무늬의 짙은 朱色 표지를 사용하였다. 서명은 표지에 직접 墨書하여 線裝하였다. 표지 우측에 ‘光武四年(1900)庚子十二月 日’이 필사되어 있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雙邊에 上內向二葉花紋魚尾인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다. 字數는 10行 24字이다. 책 수는 2卷 2冊이고, 본문의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의 書眉에 간혹 籤紙를 附添하고 있다. 각 책의 뒤표지 이면에 ‘大正八年二月日改修’라 기록하였다. 인장은 각 책의 제1면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고, 우측 하단에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조경단전주이씨 始祖 묘인 肇慶廟 앞에 쌓은 제단이며, 준경묘穆祖, 영경묘穆祖妃의 묘소이다. 장례원1895년(고종 32) 관제 개혁 때 종래의 通禮院이 담당하던 궁중의식·朝會儀禮뿐만 아니라 예조에서 주관하던 제사와 모든 능·종실·귀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로, 1910년 폐지되었다.
본서는 2권 2책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권은 조경단을 제2권은 준경묘영경묘에 대한 내용으로 대별하였다. 제1권의 목차는 좌목, 조칙(筵說奏本, 書奏 附), 移照, 來照, 電報, 工役, 재용, 상전, 守護節目의 순서로 구성되었다. 공문서 중에는 한글을 혼용하여 표기한 것이 주목된다.
「좌목」에는 영건청의 당상은 장례원경 李鎬翼, 장례원 소경 沈相璜, 李載崑, 李重夏전라북도관찰사 李完用이 맡았고, 낭청은 조경단수봉관 이강일 등 10명, 별감동은 정3품 김명주 등 17명, 雇員은 5명, 사령은 3명으로 구성되었다.
「조칙」은 1898년 9월 12일 의정부 찬정 이종건 등이 전주 건지산의 벌목과 몰래 무덤 쓰는 일에 대하여 상소한 것을 시작으로 조경단 영건과 삼척준경묘영경묘 일곽의 비석과 祭閣 조성과 관련한 각종 논의가 정리되었다.
「移照」에는 장례원, 전라북도관찰사, 궁내부, 전주영건당상 사이에 왕래한 공문을 실었다. 영건청은 종정원에 설치되었는데, 영건청의 사목별단, 조경단준경묘, 영경묘 3처의 제식, 제관, 제기, 제물 등에 관한 별단, 완산에 있는 미국인 양옥 2區를 옮겨 짓는 비용, 오목대의 비각 규모와 조경단오목대 각처 전후 공역비 명세서까지 상세히 기록되었다.
「來照」에는 장례원, 궁내부, 전라북도관찰사에게 전해진 공문이 정리되었는데, 조경단 영건이 1899년 4월 8일 시역되었고, 작업은 浮石所, 伐木所, 造甓所, 補土所, 治道所 派員 명단이 자세하다. 조경단 碑閣은 6월 21일에 시작하여 7월 4일 상량되었고, 준경묘영경묘 비각, 제각, 제실, 터다지기 등 각종 공사 일정, 그리고 공사비 내역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전보」는 전주에 파견한 奉審 宰臣과 왕래한 전보를 報告, 去電, 來電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공역」은 조경단의 壇所, 비각, 재실, 향대청, 제기고, 홍살문, 梧木臺滋滿洞, 완산의 비각, 비석과 표석, 향축석, 제기 등의 제작에 동원된 物力을 기록하였다.
「상전」은 영건에 참여한 모든 관리와 공장의 명단과 시상 내용을 적고, 조경단의 경비의 마련 내용을 부기하였다. 그 뒤에 조경단, 오목대, 자만동, 완산에 세운 비석 앞면에 어필로 쓴 大字篆文, 어제 陰記를 실었다. 「수호절목」에는 1782년(정조 6) 정한 乾止山禁養節目과 당시 정한 乾止山禁護節目을 차례로 실었다. 당시 의궤는 11건이 제작되어 궁내부, 시강원, 비서원, 장례원, 종정원, 조경단, 준경묘, 정족산성, 태백산, 오대산, 적상산성에 각 1건씩 분상하였다.
제2권은 삼척준경묘영경묘의 영건 사실을 기록하였다. 제2권의 목차는 電報가 없고, 목차에 墓地節目을 두고 있으나 본문에는 수호절목이라 적고 있다. 「좌목」이나 「상전」의 내용은 본문에서는 생략하였다. 「移照」의 1899년 4월 28일 고종황제삼척군수에게 보낸 훈령에 의하면, 三陟 蘆洞의 墓號를 ‘濬慶’이라 하고, 東山에 있는 묘호는 ‘永慶’이라 하여 封域을 한정하고 비를 세우며 관원을 두고 재실을 세우는 등의 절차는 肇慶壇營建廳에서 모두 거행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조경단영건청이 그대로 삼척준경묘영경묘의 영건 공역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제1권의 내용과 중복을 피한 것이다.
「공역」에서는 준경묘 정자각 6間, 碑閣 1間, 수라간 3間, 수복방 3間, 재실 12.5間, 행각 10간, 제기고 2간을 새로 조성하였고, 영경묘 정자각 6間, 碑閣 1間, 수라간 3間, 수복방 3間, 活耆洞 비각 1간, 神御平床 2좌, 神門朱簾 2浮, 양묘의 비석 2좌, 활기동 비석 1좌 등의 신축 건물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에는 제기, 재용, 상전의 내용이 자세하고, 어필 준경묘비석, 영경묘비석, 활기동비석 전면의 大字篆文과 御製陰記, 준경묘영경묘 정자각 상량문, 삼척 兩墓誌石 서문과 兩墓誌가 차례로 실렸다.
「수호절목」에는 도관찰사와 지방관이 봉심하는 내용과 제기 點考, 수직원역, 수호군, 묘역의 정자각, 비각 등의 수호 절목을 상세히 나열하였다.
장서각에 소장된 동일 서명의 『조경단준경묘영경묘영건청의궤』(K2-3582)는 1932년 이왕직에서 본서를 똑같이 베낀 것이다.
특성 및 가치
 대한제국기 전주 조경단삼척준경묘영경묘의 영건 과정의 전말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사료로 의미가 있다. 또한 당시 고종황제조선의 시조와 추존 조상의 묘역에 대한 조성 사업을 통해 제국 황실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장서각소장의궤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집필자

정은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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