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인정전중수의궤(仁政殿重修儀軌)

자료명 인정전중수의궤(仁政殿重修儀軌) 저자 중수도감(重修都監) 편(編)
자료명(이칭) 인정전중수의궤(仁政殿重修儀軌n1-1책) , 仁政殿重修儀軌 저자(이칭) 중수도감(조선) 편(重修都監(朝鮮) 編) , , 重修都監(朝鮮) 編
청구기호 K2-3577 MF번호 MF35-55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工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기록유산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장서각기록유산 디지털아카이브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서비스분류 국가문화재
· 작성시기 1857(철종 8년)
· 청구기호 K2-3577
· 마이크로필름 MF35-55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유일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중수도감(重修都監)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4.0 X 31.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2.0×25.5㎝
· 인장 奉使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857년(철종 8) 인정전의 중수 전말을 기록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표제와 권수제, 서근제는 ‘仁政殿重修儀軌’이다. 서근제는 옆에 ‘改修’와 冊次 ‘全’, ‘哲宗’이 기록되어 있다. 표지 장황은 민무늬 짙은 朱色 표지를 사용하였다. 서명은 표지에 직접 墨書하여 線裝하였다. 표지 우측에 ‘咸豊七年(1857丁巳十二月 日’ ‘哲宗八年’이 필사되어 있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單邊에 上內向二葉花紋魚尾인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다. 字數는 12行 24字이다. 책 수는 1冊 109張이고, 본문의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에 ‘仁政殿’, ‘唐家’, ‘五峯屛’ 등 여러 장의 圖面이 있다. 본문 마지막에 ‘監蕫堂上輔國崇祿大夫行判敦寧府事兼戶曹判書 奎章閣檢校提學臣金[수결]’이 있다. 뒤표지 내지에 ‘大正八年(1919)一月日改修’라 기록되어 있다. 인장은 제1면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고, 우측 하단에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을 날인하였다. 매 면마다 ‘奉使之印’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인정전1405년(태종 5) 완공한 후 1418년(태종 18) 중건하였고, 이후 임란 때 전소되어 1607년(선조 40) 재건되었다. 이후 1803년(순조 3) 화재로 전소되어 1804년(순조 4) 영건되었고, 1857년 중건되기에 이른다.
본서의 체제는 좌목, 시일, 도설, 承傳(附 奏, 啓, 上樑文, 儀註), 移文, 來關, 감결, 재용(附 式例), 實入, 賞典, 工匠, 儀軌의 순서이다. 중수도감에 참여한 인물의 「좌목」은 감동당상 金炳冀, 낭청 趙冕鎬, 別看役 강이오, 김길순 등 5명, 監董裨將은 조명엽 등 4명, 看役裨將은 김재흥 등 32명, 畫師裨將은 이만주 등 2명, 爐冶裨將은 조응화, 計仕는 윤득연 등 4명, 書吏는 김학준 등 7명, 庫直은 김윤식, 사령 4명, 文書直 박명득, 私庫直 2명, 官使喚 2명, 使喚旗手 7명으로 구성되었다.
「시일」은 인정전 중건의 주요 일정을 기록하였다. 1854년(철종 5) 9월 23일 禁衛新營에서 治木을 시작하였으나, 1855년(철종 6) 1월 25일 전교로 인해 役을 정지하였는데 왕대비전에 병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1857년 정월 26일 다시 역을 시작하였다. 2월 16일 機械를 시역하고, 2월 20일 御間 동쪽 대들보를 받들고 나와 入排하였다. 2월 25일 상하층 월대 입배를 시역하고, 4월 3일 상량하였다. 4월 22일 상하층 단청을 시역하였고, 4월 25일 기와를 덮는 것을 마쳤다. 5월 5일 현판을 걸고 5월 7일 상하층 월대 입배를 마치고, 5월 29일 상하층 단청을 모두 마쳤다. 윤5월 3일 曲屛을 입배하고, 윤5월 6일 草記를 마치고 啓를 올렸다.
「도설」에는 인정전 전면을 첫 면에 그리고 전내에 입배한 唐家, 당가천장(廉隅, 赤貼), 오봉병, 虛柱流音(草葉, 連環廳板, 壯縀廳板), 곡병을 차례로 그렸다. 마지막에는 중건 공사에 사용된 기계 중 하나인 轆轤를 자세히 그린 점이 주목된다. 이후 인정전의 殿宇부터 곡병에 이르기까지 각 도면 세부 요소에 대한 尺量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승전」에서는 1854년 5월 25일 영의정 김좌근인정전을 중건한 지 50년이 되어 수선이 필요한 지 오래되었으니 1855년 봄부터 修改할 것을 啓한 것부터 1857년(철종 8) 윤5월 6일 인정전 수개 시 감동당상 이하 별단을 철종에게 書入한 계를 올린 것까지 실려 있다.
「상량문」은 1804년 인정전 영건 시 지은 상량문을 참고하여 검교제학 김병기가 지어 올린 것으로 眞紅漢甫緞에 墨書하였다. 「이문」은 1854년 5월 27일 비변사에 보낸 문서부터 1857년 4월 22일 황해도에 보낸 문서까지 각 관서와 각 도에 보낸 문서이다. 「來關」은 각 도의 수령이 보낸 공문으로 1854년 6월 29일 황해도관찰사가 상달한 문서부터 1857년 5월 11일 황해도 군수가 상달한 문서까지 실려 있다. 「재용」은 각종 물량과 匠募雇價, 의궤 제작비, 등 10만 9,777냥 7전이 소용되었고, 인건비로는 별간역, 계사비장, 서리, 고직 등의 料布式, 각색 工匠 匠料式이 차례로 정리되었다. 「실입」은 중건에 소용된 각종 물량을 정리한 것이며, 「상전」은 인정전 중수 당상 이하 목수, 석수, 각종 장인들, 녹로선 格軍, 擔軍, 募軍, 自願募軍에 이르기까지 시상 내역을 정리하였다.
마지막은 의궤 제작과 관련한 事目과 이문, 감결, 실입 등을 정리하였다. 의궤는 8건을 제작하여 규장각 1건, 호조, 예조, 춘추관에 각각 1건, 태백산, 오대산, 적상산성, 정족산성 4곳의 사고에 각 1건씩 분상하였다. 권미에는 감동당상 김병기와 낭청 조면호의 수결이있다.
특성 및 가치
 장서각에만 소장된 유일본 의궤로, 1804년 인정전이 영건된 이후 1857년 중수된 인정전과 배입한 물건들의 도설이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특히 공사에 사용된 녹로가 도설에 포함된 것이 주목된다. 또한 중수도감을 중심으로 한 조정의 논의와 각 관서에서 왕래한 문서, 소용된 물품 및 비용, 참여 인원의 인건비, 상전 내역까지 적어 당시 인정전 중수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는 사료이다.

집필자

정은주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