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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상장등록(張禧嬪喪葬謄錄)

자료명 장희빈상장등록(張禧嬪喪葬謄錄) 저자 예조(禮曹) 편(編)
자료명(이칭) 張禧嬪喪葬謄錄 , 장희빈상장등록(張禧嬪喪葬謄錄n1-1책) 저자(이칭) 禮曹(朝鮮) 編 , 예조 , 예조(조선) 편(禮曹(朝鮮) 編)
청구기호 K2-3006 MF번호 MF35-623
유형분류 고서/등록 주제분류 국왕·왕실/의례/등록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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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23(경종 3년)
· 청구기호 K2-3006
· 마이크로필름 MF35-62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예조(禮曹)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9.5 X 26.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1.8×21.0㎝
· 인장 禮曹之印,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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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숙종의 嬪인 禧嬪 張氏(1659~1701)의 喪葬 및 遷葬, 追報 등과 관련된 문서를 날짜순으로 정리한 등록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張嬉嬪喪葬謄錄’이고 書根題는 ‘嬉嬪喪葬’이다. 版下口에 ‘禮曹上’이 인쇄된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의 10행 界線의 印札空冊紙에 내용을 필사하였다. 본문 첫 면 우측 상단에 ‘藏書閣印’, 중앙에 ‘禮曹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개장한 뒤표지 이면에 ‘西紀一九七一年四月 藏書閣 再裝’이라는 기록이 있다.
체제 및 내용
1책의 필사본이다. 1701년(숙종 27) 희빈 장씨가 自盡하기 직전부터 사후에 추보하는 일과 관련된 傳敎와 備忘記, 儀註 및 예조의 單子와 보고, 牒呈, 節目 등의 각종 문서를 정리하여 수록하였다. 희빈 장씨의 본관은 仁同이며, 이름은 玉貞이라고 한다. 역관 집안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입궁하여 1686년(숙종 12)에 淑媛이 되고, 1688년(숙종 14) 왕자 (후의 경종)을 낳았다. 1689년(숙종 15) 왕비 책봉을 받았으나 1701년 賜死되었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은 1701년 9월 28일부터 1704년(숙종 30) 8월 19일까지의 기록이다. 문서의 날짜 순서가 바뀐 채 실려 있기도 하다. 9월 28일 장씨를 自盡하도록 하라는 비망기와 7월 7일의 전교는 嬪이 后妃로 등극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10월 8일에는 장씨仁顯王后 閔氏(1667~1701)를 시기하고 원망하여 神堂을 차리고 저주하였으므로 이전의 비망기에 따라 자진하도록 하라는 비망기가 실려 있다. 10월 10일부터는 상장과 관련된 것이다. 禮葬으로 하지만 祭需만 공급하고, 왕세자와 왕세자빈은 緦服을 입고 3일 만에 制服하였다. 11월 12일부터는 묘소를 정하는 논의 과정이 자세히 실려 있다. 1702년(숙종 28) 1월 16일에는 묘소를 楊州 仁章里로 한다는 山論別單이 수록되어 있고, 錦川君稽山論이 別錄으로 첨부되어 있다. 1월 18일에는 安葬 택일을 하였고, 1월 22일에 묘소의 始役을 하여 같은 달 30일 申時에 下棺을 하도록 하였다. 4월 28일과 6월 11일에는 묘소 주변의 옛 무덤 및 백성의 집과 밭을 사들여 정리한 일에 대한 예조판서예조의 보고가 있고, 10월 9일 장씨의 첫 기일에 왕세자가 望哭禮를 하지 말도록 하였다. 1704년 8월 19일 예조의 보고에는 숙종의 왕릉 행차 때에 왕세자도 함께 장씨의 묘소 근처를 지나가는데 별도의 방문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擧哀儀, 成服儀, 除服儀를 비롯하여 哭臨儀, 望哭儀 등의 의주도 실려 있다.
두 번째 부분은 「仁章里遷葬謄錄」으로 내용이 가장 많다. 1717년(숙종 43) 12월 19일부터 1719년(숙종 45) 6월 19일까지의 기록으로 장씨의 묘소가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廣州 鎭海村으로 옮겨 새 묘소를 조성하는 일과 관련된 문서를 정리하여 수록하였다.
마지막 부분은 「追報謄錄」이다. 1722년(경종 2) 1월 12일부터 1723년(경종 3) 6월 10일까지의 기록으로 경종의 私親인 장씨를 추보하여 ‘玉山府大妃 張氏’라는 새로운 신주를 제작하고, 祠宇에 봉안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사우는 한양 향교동에 있는 完豊府院君家를 매입하여 조성하였고, 경종은 별도의 儀註를 마련하여 친히 展謁하였다.
특성 및 가치
경종의 생모로 賜死당한 희빈 장씨의 장례와 묘소 조성 상황을 비롯하여 경종의 사친으로 추숭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다.

참고문헌

藏書閣所藏謄錄解題』, 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1.

집필자

김세은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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