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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기사등록(入耆社謄錄)

자료명 입기사등록(入耆社謄錄) 저자 장례원(掌禮院) 편(編)
자료명(이칭) 入耆社謄錄 , 입기사등록(入耆社謄錄n1-1책) 저자(이칭) 장예원(조선) 편(掌禮院(朝鮮) 編) , 掌禮院(朝鮮) 錄
청구기호 K2-2904 MF번호 MF35-609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耆社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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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44(영조 20년)
· 청구기호 K2-2904
· 마이크로필름 MF35-609
· 기록시기 1744年(英祖 20) 以後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장례원(掌禮院)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9.0 X 19.4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4×13.7㎝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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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肅宗英祖耆老所에 들어간 事跡을 1744년(영조 20) 이후 정리한 등록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표지 서명을 따랐다. 표지 장황은 황갈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표지와 본문 사이의 격지 하단에 ‘入耆社謄錄’이라고 墨書한 꼬리제첨이 있다. 본문은 四周雙邊 朱色 印札空冊紙에 10行 字數不定으로 기록하였다. 印札空冊紙의 板口 상단에는 ‘掌禮院’이, 하단에는 ‘第道’라는 표시가 있다.
체제 및 내용
조선시대 기로소는 원로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로, 耆社라고도 한다. ‘기로소’라는 명칭은 세종 때에 확정되었으나 이미 태조가 60세에 전신인 기영회에 들어간 것이 전례가 되어 조선 후기 숙종영조기로소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1765년(영조 41)부터는 독립적인 관서로서 위상을 갖게 되었고, 『대전회통』에서는 품계가 없는 최상위 관서로 법제화되었다. 기로소는 무임 관서이지만, 조선 후기에 상위 관서로 법제화 된 것은 태조의 뜻을 계승하고 노인을 공경하고 우대하며 모든 백성에게 혜택이 미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본서는 조선 후기 숙종영조를 각각 구별하여, 국왕이 기로소에 들어가는 과정과 이를 기념한 의식을 일자 순서로 기록하였다. 숙종기로소 입사 논의는 1719년(숙종 45) 1월 10일 前直長 李楫이 다음 해인 1720년(숙종 46)에 국왕의 나이가 육순이 되므로 태조의 사례를 들어 기로소에 들어갈 것을 권하는 내용의 上書가 계기가 되었다. 이후 기로소 입사를 기념한 進宴 시행 논의가 이어졌다. 2월 11일 숙종기로소에 입사하였으며, 4월 18일에 기로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6월 11일 기로신의 靈壽閣이 완성되자 공로가 있는 任埅 등에게 반숙마 등을 상으로 주었다. 9월 2일 김창집 등의 진연 요청이 받아들여져 進宴廳이 설치되고 9월 29일에 진연을 행한 뒤 관련자들을 시상하였다.
영조의 경우는 1744년 7월 29일 礪恩君 李梅가 국왕의 나이가 51살이 되자 선왕과 나이 차이는 있으나 望六旬이라며 기로소 입사를 권유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에 대해 김재로 등이 반대하자 8월 26일 국왕이 영수각에 친림하여 봉심하고 어첩에 친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9월 9일 국왕이 세자를 거느리고 창덕궁 선원에 배알하고 이어 기로소에 거둥하여 영수각을 봉심한 뒤에 어첩을 올리자 여기에 국왕의 존호를 친히 썼다. 이어 10월 4일 왕대비에 대한 진연 의식을 거행하였는데, 이때 영조는 당시의 진연이 耆社의 禮를 따른 것이라고 하며, 진연청에 하교하여 왕대비가 즐겁도록 노래를 위한 가사를 내렸다. 10월 7일에는 숭정전에서 국왕에게 올리는 진연 의식이 치러졌고, 연회를 마친 뒤에는 국왕은 예방승지기로소 신하들과 함께 영수각에 나아가 賜饌하였다. 등록에는 이때 잔치에 참여했던 徐命均, 金興慶 등의 명단을 일일이 수록하였다. 마지막은 10월 9일 의식을 준비하는 데 공이 있는 趙觀彬, 金若魯 등에게 熟馬 등을 시상하는 내용으로 마치고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숙종기로소 입사는 태조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영조의 입사는 숙종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당대 사회에 孝와 仁의 실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진연을 통해서 국왕과 신료들이 화합을 모색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김문식, 「1719년 숙종의 기로연 행사」, 『사학지』40, 단국대학교 사학과, 2008.
정만조, 「영조대 어연의 설행논의에 관한 일고찰」, 『한국학논총』20,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8.

집필자

이근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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