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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단의궤(皇壇儀軌)

자료명 황단의궤(皇壇儀軌)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皇壇儀軌 저자(이칭) 미상(編者未詳) , [編者未詳]
청구기호 K2-2524 MF번호 MF19-29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祠·社·室·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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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사년미상(寫年未詳)
· 청구기호 K2-2524
· 마이크로필름 MF19-29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27.5 X 19.8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0×15.0㎝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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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皇壇의 건립 연원과 公廨의 현황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御製詩와 陳設圖를 수록하고 있는 책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은 ‘皇壇儀軌’이며, 제첨 위에 기재되어 있다. 본문은 10행의 흑색 인찰 공책지에 내용을 필사하였다. 권말에는 제사에 사용되는 〈陳設圖〉가 수록되어 있다. 뒤표지 이면에는 ‘馮榮燮寄贈’, ‘西紀一七四九(英祖二五)己巳 命編 拔萃本’이라 기재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황단은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 구원병을 파견한 明나라神宗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가 이후에 명나라毅宗太祖까지 모신 제단인데, 본서는 이 황단의 건립과 변천 등을 기록한 책이다. 儀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일반적인 의궤의 체제를 모두 담고 있지는 않고 대략의 건립 연원과 公廨의 규모와 연원, 肅宗·英祖·正祖의 御製詩, 그리고 陳設圖 하나만을 수록하고 있다.
1704년(숙종 30)의 기사로, 神宗 제향의 필요성을 논의한 내용이 가장 먼저 실려 있고, 禁苑에 壇을 설립하라는 명에 따라 10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1월에 공사를 마친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리고 1749년(영조 25) 기사로 신종만 모셨던 것을 확대하여 병자호란 때에 우리를 도운 명나라 毅宗과 그 太祖를 아울러 모셔야 한다는 논의를 실었다.
「壇以下公廨」 항목에서는 大報壇, 奉室, 敬奉閣, 饌幔臺, 香室, 典祀廳, 宰牲所, 樂生所, 東西樓上庫, 守直所, 齋殿, 冽泉門, 拱北門, 祖宗門, 集成門, 西墻門, 藏虹門, 永崇門, 獅子橋, 朱雀峴, 漢族直所, 明禮門에 대해 각각 조성과 개축 등에 대한 설명을 부기하고 있다. 대보단1704년 10월에 처음 지어져 1749년 3월에 증축되었고, 3칸 규모의 봉실은 1749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경봉각1799년(정조 23)에 移建되었다고 하는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守直」 항목에서는 守直官, 守僕, 騎兵, 漢旅, 書員, 房直이 처음 설치된 시기와 인원수를 차례로 기록하였고, 「御製詩」 항목에는 숙종의 시 1수, 영조의 시 5수, 정조의 시 2수가 실려 있다.
앞뒤 표지의 이면에 ‘揚休山立 玉色金聲’과 ‘風月無邊 庭草交翠’란 글귀가 초서로 적혀 있는데, 이는 朱熹가 지은 「六先生畫像贊」의 내용 중 程灝周敦頤에 대한 내용으로, 본서의 내용과는 무관하다. 후대의 소장자가 따로 적은 글인 듯하다.
특성 및 가치
皇壇儀』, 『大報壇謄錄』, 『皇壇重修儀』 등과 함께 고찰할 때, 시대에 따른 황단의 변모 양상을 아울러 살펴볼 수 있다.

집필자

이정원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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