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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의궤(圜丘壇儀軌)

자료명 환구단의궤(圜丘壇儀軌) 저자 통례원(通禮院) 편(編)
자료명(이칭) 원구단의궤(圜丘壇儀軌) , 원구단의궤(圜丘檀儀軌) , 圓丘壇儀軌 저자(이칭) 통예원(조선) 편(通禮院(朝鮮)編) , 通禮院(朝鮮)編 , 통례원
청구기호 K2-2523 MF번호 MF35-559
유형분류 고서/의궤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祠·社·室·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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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7
· 청구기호 K2-2523
· 마이크로필름 MF35-559
· 기록시기 1907~1910年(隆熙年間)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통례원(通禮院)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5.1 X 35.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3.6×30.5㎝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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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圜丘祭에 사용했던 「圜丘祈穀大祭祝式」, 「圜丘冬至大祭祝式」, 「宗廟第一室預告祝」, 「圜丘設壇配享位牌奉安時預告祭祝文」 등 4개의 祝式을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은 ‘圓丘壇儀軌’이다. 본문은 16행의 오사란에 붓으로 필사하여 내용을 기재하였다. 본문의 일부에는 글자를 지우고 수정한 흔적이 확인되며, 王의 諱를 가리기 위해 붙어 있던 첨지가 떼어진 흔적이 있다.
체제 및 내용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조선 전기에 폐지되었다가 1897년 高宗大韓帝國을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하면서 다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본서는 이 환구단에 대한 의식 절차를 담고 있다. 서명에는 儀軌라는 명칭이 포함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의궤가 갖추고 있는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지는 않고 「환구기곡대제축식」, 「환구동지대제축식」, 「종묘제일실예고축」, 「환구설단배향위패봉안시예고제축문」 등 모두 4개의 축식만 수록되어 있다.
앞의 3개의 축문은 “維隆熙某年歲次”로 시작하여, 본서가 환구단의 제사가 처음 시작된 광무 연간에 작성된 것이 아니라 純宗이 제위를 이은 이후인 융희 연간에 작성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환구동지대제축식」에는 주석으로 “己亥十一月二十日 親祭時用此祝”이란 내용이 부기되어 있는데, 이때는 太祖환구단에 배향하고 동지제를 지낸 때이다. 「환구동지대제축식」에는 환구제 3일 전에 제사 지낸다는 주석이 달려 있다.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환구설단배향위패봉안시예고제축문」에는 “維朝鮮光武元年 歲次丁酉九月丁亥朔十四日庚子”로 시작하여 앞의 3개의 축문과는 다르게 광무 연호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환구단이 설치되고 처음 위패를 봉안할 때의 축식으로, 연례적으로 지내는 제사에 사용하는 축문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날짜를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본서는 장서각 소장 『환구기곡대제축식』(K2-2160)과 동일 내용으로, 연호가 광무에서 융희로 바뀌고 제사 주관자가 달라짐에 따라 약간의 글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기존에 축식으로 불리던 것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새로 작성하면서 의궤로 명칭을 바꾼 것임을 알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환구기곡대제축식』(K2-2160)과 함께 고찰해 볼 때, 시대에 따른 축식의 변화와 의궤라는 명칭의 사용 범위 확대를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圜丘祈穀大祭祝式』(K2-2160)

집필자

이정원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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