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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묘춘추향사축식(肇慶廟春秋享祀祝式)

자료명 조경묘춘추향사축식(肇慶廟春秋享祀祝式) 저자 장례원(掌禮院) 편(編)
자료명(이칭) 肇慶廟春秋享祀祝式 저자(이칭) 掌禮院(朝鮮)編 , 장예원(조선) 편(掌禮院(朝鮮)編)
청구기호 K2-2488 MF번호 MF35-2911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殿·宮·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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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7(융희 1년)
· 청구기호 K2-2488
· 마이크로필름 MF35-2911
· 기록시기 1907~1910年(隆熙 1~4)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장례원(掌禮院)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5.0 X 35.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3.8×31.8㎝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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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英祖 대 건립한 肇慶廟에서 대한제국기 純宗 대에 황제국의 지위에 맞추어 작성한 봄과 가을의 축문 양식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은 ‘肇慶廟春秋享祀祝式’이며, 붉은색 실을 사용하여 6침안의 선장 형태로 장정하였다. 본문의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으며, 인장이 날인된 위쪽에는 기록이 적혀 있는 첨지가 붙어 있다. 본문은 16행의 오사란 용지에 내용을 필사하여 기록하였다. 표제 및 표지는 후대에 개장한 것으로 보인다. 내지에 세로로 ‘肇慶廟春秋享祀祝式’이라고 되어 있다. 표지와 내지의 글씨 및 본문의 필체가 상이하여 모두 다른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연대는 ‘隆熙’라고 하였고 제사의 주재자에 孝玄孫 太皇帝가 있어서 순종대의 축문 양식임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조경묘영조가 조선왕조의 시조인 李翰과 부인 慶州金氏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후 조경묘의 제사는 대한제국기에도 지속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이왕실에서도 계속 유지하였다. 따라서 이곳의 제사는 왕실의 주요 제례였다.
축문의 내용은 한 페이지 분량이며 축문은 모두 9개의 세로줄로 쓰였다. 일반적으로 축문식은 제례를 거행할 때 용이하게 사용하기 위해 첩절로 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 자료는 현장에서 사용하거나 실무자들이 이용하려던 것이 아니라 제례의 변화상을 정리하기 위해 축문식만을 별도로 모은 것의 일부라고 추정된다.
축문의 내용을 보면, 첫 줄에 조경묘춘추향사축식이라고 하고 그 하단에 작은 글씨로 告由移還安謹以下同 每年二八月上旬內擇日設行이라고 하였다. 둘째 줄은 維隆熙某年歲次某甲某月某甲朔某日某甲이고, 셋째 줄은 孝玄孫太皇帝諱倦勤傳禪屬皇帝諱이며, 넷째 줄은 謹遣臣, 다섯째 줄은 敢昭告于, 여섯째 줄은 始祖考先公, 일곱째 줄은 始祖妃慶州金氏伏以, 여덟째 줄은 慶延百代禮展千年令辰增感明禋式虔謹以淸酌庶羞式陳明薦尙, 아홉째 줄은 饗이다.
특성 및 가치
조경묘영조가 조선왕조의 시조를 추모하고 왕실의 권위를 더 빛나게 하려는 의도에서 건립하였으며, 그 취지는 대한제국기에도 지속되었다. 대한제국기에 고종은 황실을 선양하려는 여러 기념비적 행사를 수시로 추진하였고, 그 일환으로 조경묘의 제사도 황제국의 지위에 맞게 거행했다. 따라서 이 자료는 대한제국기 황실 제사의 구체적인 실례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이며, 황제국 이전의 제사와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참고문헌

이영춘, 「朝鮮後期의 祀典의 再編과 國家祭祀」, 『한국사연구』 118, 2002.
이욱, 「근대 국가의 모색과 국가의례의 변화」, 『정신문화연구』 95, 2004.

집필자

이왕무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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