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숭의묘의궤(崇義廟儀軌)

자료명 숭의묘의궤(崇義廟儀軌) 저자 통례원(通禮院) 편(編)
자료명(이칭) 崇義廟儀軌 저자(이칭) 통예원(조선) 편(通禮院(朝鮮)編) , 通禮院(朝鮮)編 , 통례원
청구기호 K2-2461 MF번호 MF35-556
유형분류 고서/의궤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殿·宮·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7(융희 원년)
· 청구기호 K2-2461
· 마이크로필름 MF35-556
· 기록시기 1907年(隆熙元年) 以後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통례원(通禮院)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51.0 X 34.6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7.0×30.2㎝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대한제국기 융희 때에 건립된 崇義廟 祭享의 祝式을 모은 의궤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은 ‘崇義廟儀軌’이다. 제목은 흰색 제첨 위에 기재되어 있다. 표지는 녹색이며, 선장의 형식으로 장정되어 있다. 본문은 3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楮紙를 사용하였고, 사주쌍변 16행의 오사란 종이 위에 필사하여 내용을 기록하였다. 본문의 내용은 1~2면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3면은 빈 면이다. 내제나 서문, 목차 등이 전혀 없이 바로 축식이 이어 나와서 제작 경위는 알 수 없다.
체제 및 내용
숭의묘劉備로 알려진 漢나라 昭烈皇帝를 주향으로 하고 關羽張飛를 배향한 사당이다. 이 사당은 1902년(광무 6) 10월 4일 궁내부 특진관 趙秉式의 발의로 시작하여 1904년(광무 8) 4월 27일에 완공되었으며 유비, 관우, 장비의 위패와 초상을 모셨다. 이 의궤에 실린 축식은 3건으로 유비는 ‘漢昭烈皇帝’로 불리고, 관우는 ‘顯靈昭德義烈武安關帝’로, 장비는 ‘桓侯張公’이라는 호칭으로 축문에 각각 기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관우는 조선시대에는 ‘關王’으로 불리었으나, 1902년(광무 6)에 關帝로 존숭되었다. 이 의궤의 마지막에는 諸葛亮, 趙雲, 馬超, 黃忠, 王甫, 周倉, 趙累, 關平 8위의 從享 사실을 기록하였지만, 이들에 관한 축문은 실려 있지 않다.
이 축식은 1907년에 작성된 것이지만, 1908년 7월 23일 勅令 第50號 「享祀釐正件」에 의해 다른 關廟와 함께 숭의묘가 폐지되었다.
고종조에 관우 신앙이 크게 성행하여 1883년(고종 20)에 기존의 동관왕묘남관왕묘 외에 북관왕묘를 새로 건립하고 1902년에 관왕을 관제로 승격시켰다. 이와 같이 묘를 세워 관우뿐만 아니라 유비장비를 함께 모신 것은, 後漢 말 위기 때에 국가를 돕고 도적을 토벌하여 忠義가 日星과 같이 빛나 후세의 모범이 된다는 조병식의 상소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충절과 의리를 본받아 당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특성 및 가치
매우 일시적이지만 관우뿐만 아니라 대한제국기 때에 새로 존숭되었던 유비장비를 함께 향사하던 숭의묘에 대해 알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다.

집필자

김혁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