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명성황후]홍릉천봉주감의궤([明成皇后]洪陵遷奉主監儀軌)

자료명 [명성황후]홍릉천봉주감의궤([明成皇后]洪陵遷奉主監儀軌) 저자 홍릉천봉주감(洪陵遷奉主監) 수명편(受命編)
자료명(이칭) 洪陵遷奉主監儀軌 , [홍릉]천봉주감의궤([洪陵]遷奉主監儀軌) , 홍릉천봉주감의궤(洪陵遷奉主監儀軌n1-2책) 저자(이칭) 홍릉천봉주감 편(洪陵遷奉主監編) , 洪陵遷奉主監 編 , 홍릉천봉주감
청구기호 K2-2389 MF번호 MF35-663
유형분류 고서/의궤 주제분류 국왕·왕실/의례/의궤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19
· 청구기호 K2-2389
· 마이크로필름 MF35-66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홍릉천봉주감(洪陵遷奉主監) 수명편(受命編)

형태사항

· 크기(cm) 42.4 X 30.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6.9×20.8㎝
· 인장 奉謨堂印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919년高宗이 승하한 후 明成皇后 閔氏의 능을 洪陵으로 遷奉하는 전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표지는 米色 삼베로 장황하였다. 제첨은 주색 테두리를 두른 백색 비단 위에 서명이 墨書되어 있다. 2책으로 표지 서명 하단에 책차가 ‘卷上, 卷下’로 표기되어 있다. 서근제는 표지 서명과 동일하다. 본문은 사주쌍변 상하향2엽화문어미의 주색 인찰 공책지에 10행 20자로 정서되어 있다. 권수제 면에 ‘奉謨堂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홍릉고종명성황후 민씨(1851~1895)의 同原異岡陵이다.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자 10월 22일에 능호를 肅陵이라 하였고, 1897년 10월 29일에 양주 天藏山 아래에 장사 지내고 능호를 홍릉이라 하였다가 1900년에 이곳의 묏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妙積山 金谷으로 천장이 논의되어 공역을 시작하였다. 홍릉의 천릉은 1902년 1월 24일로 발인이 결정되었으나 몇 차례 거듭 연기되어 1903년 10월 14일 出玄宮 하고 같은 달 26일 발인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그러나 실제 천봉은 고종의 승하 시까지 이루어지지 않다가 1919년 고종의 승하로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에 봉릉을 하게 되자, 이곳으로 명성황후를 천봉하여 동원이강릉의 홍릉을 조성하였다.
상권의 목록은 時日·座目·下敎及上啓·儀註·祝文·輓章·班次 등 7개 항목이고, 하권의 목록은 參列人員服色·各軍丁服色·各項日子排定·奉出梓宮時擧行節次·啓舊陵時及梓宮奉出時諸具·陵上閣·隧道閣·欑宮·紙牓造成·舊陵成殯後擧行諸具·哀冊·誌石·贈玉贈帛·外梓宮·輦輿·大轝·小方牀·肩轝·外梓宮轝·吉儀仗·凶儀仗·各樣儀物·祭奠所所用·賞典 등 24항목이다.
상권의 「시일」은 1919년 1월 30일에 后土祭·告由祭 설행을 시작으로 2월 16일 오후 6시에 지방을 매안한 것까지 홍릉을 천봉하는 과정의 주요 일정을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좌목」은 홍릉 천봉을 담당한 관리들의 명단이다. 총호사의정부 의정 尹容善 등 2인, 총호원에 자작 閔泳奎, 제조장례원 경 閔泳駿 등 11인, 도청申性均 등 4인, 낭청상의사 주사 李膺稙 등 17인, 감조관전 시종관 尹丙求 등 87인, 감조원에 沈景澤 등 6인, 별감동에 중추원 의관 姜湕 등 8인, 별간역에 종2품 金宗源 등 6인이다. 「하교급상계」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1900년 6월 21일에 궁내부 특진관 李載純 등 신하들의 상소와 왕세자가 내린 詔勅, 천봉을 담당하였던 관리들인 총호원과 이왕직 장관 등이 천봉의 구체적인 절차를 상주하여 재가받은 사항 등을 1919년 11월 13일까지 날짜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뒷부분은 1919년 1월 26일부터 홍릉을 천봉하라는 하교를 시작으로 2월 16일에 총호원이 下玄宮을 한 후에 靈轝 등 각양 의물을 정결처에서 태운 것을 아뢰는 啓聞과 이를 허락하는 기사가 정리되어 있다.
「의주」는 천봉주감에서 행할 의례의 절차와 각 의례의 구체적 행위를 하나하나 기록한 것이다. 수록된 의주는 題紙牓儀, 出玄宮時王妃殿下望哭儀, 捧出梓宮儀, 梓宮出安幕次奠儀 등 19종의 의주가 수록되어 있다. 「축문」은 제사 때 읽는 제문으로 고유문과 축문, 진향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斬破土時舊陵告由文, 祀后土告由文, 啓舊陵告由文 등 21종의 축문이 수록되어 있다. 「만장」은 輓詞 혹은 輓詩라고도 하는데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의 천봉에 대해 신하들이 그의 덕을 기리면서 애도하는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전 의정 閔泳奎, 전 영돈녕사사 尹澤榮, 전 규장각 제학 閔泳徽 등의 만시 119편을 수록하였다. 「반차」는 洪陵遷奉班次로 명성황후의 대여가 빈전에서 발인하여 능소에 이르기까지 행렬의 차례와 의물의 배치에 대해 수록하였다.
하권의 「참열인원복색」부터 「상전」까지 24개 항목의 내용은 『홍릉천봉주감의궤하』(K2-2390)와 같다. 「참열인원복색」과 「각군정복색」은 국장에 참여한 인원의 직명과 인원수, 복색 등과 輦輿와 의장, 각종 기물 등의 운반을 맡은 군정의 인원수와 복색을 기록한 것이다. 「각항일자배정」은 2월 12일에서 16일까지 찬궁(재궁을 모시기 위해, 빈전 안에 설치한 작은 집 모양의 구조물)의 설치에서 지방을 매안하기까지의 각 의절을 거행한 일자를 기록하였다. 「봉출재궁시거행절차」와 「계구릉시급재궁봉출시제구」는 재궁을 홍릉 광중에서 꺼낼 때 거행하는 절차에 관한 의주와, 홍릉의 광을 열 때와 재궁을 꺼낼 때 들어가는 도구들의 종류와 수량을 정리한 것이다. 이후의 「능상각」·「수도각」·「찬궁」·「지방조성」·「구릉성빈후거행제구」·「애책」·「지석」·「증옥증백」·「외재궁」·「연여」·「대여」·「소방상」·「견여」·「외재궁여」·「길의장」·「흉의장」·「각양의물」·「제전소소용」·「상전」 등의 항목은 산릉에 필요한 기구의 그림과 그 기구에 소요된 물품을 기록한 것이다.
특성 및 가치
본 『홍릉천봉주감의궤』 상·하권은 『홍릉천봉주감의궤상』(K2-2391)과 『홍릉천봉주감의궤하』(K2-2390)를 草本으로 하여 제작된 定本이다. 따라서 본서는 초본과 행자수는 물론 글자의 위치 및 空格까지도 똑같다. 차이점은 초본에는 「능상각」·「수도각」·「찬궁」·「회남수평상」·「지방조성」·「구릉성빈후거행제구」·「애책」·「지석」·「증옥증백」·「연여」·「외재궁」·「길의장」·「흉의장」·「각양의물」에서 이 기구들의 그림이 들어갈 자리 상단 여백에 ‘有圖’라고 써서 표시하고 그림을 생략한 것 정도이다. 이 의궤는 일제강점기 하에서 고종황제의 장례 시에 행해진 명성황후의 천봉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이왕직으로 격하된 조선 왕실의 천봉 의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집필자

성봉현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