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정종대왕천릉지(正宗大王遷陵誌)

자료명 정종대왕천릉지(正宗大王遷陵誌) 저자 심상규(沈象奎)
자료명(이칭) 정종대왕천릉지(正宗大王遷陵誌) , 正宗大王遷陵誌 저자(이칭) 심상규(조선)등찬(沈象奎(朝鮮)等撰) , 沈象奎(朝鮮) 等撰
청구기호 K2-2372 MF번호 MF35-187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21(순조 21년)
· 청구기호 K2-2372
· 마이크로필름 MF35-187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심상규(沈象奎) 등(等)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1.6 X 22.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821년(순조 21)正祖의 능인 健陵을 初葬地인 隆陵의 동쪽 언덕에서 서쪽 언덕으로 遷奉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은 ‘健陵遷奉誌’이다. 앞표지 우측에는 ‘正宗大王’, ‘遷陵誌’, ‘金祖等書啓’, ‘進香文十八篇’이 표기되어 있다. 본문은 광곽과 계선이 없는 楮紙에 10행 24자로 정서되어 있다. 제1장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정조의 사후 초장지는 수원 花山에 있던 隆陵(정조의 아버지로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莊祖獻敬王后 洪氏의 합장묘)의 동쪽 언덕으로 능호는 健陵이었다. 이후 1821년 정조의 비 孝懿王后 金氏가 승하하자 융릉의 서쪽 언덕으로 건릉을 천봉하여 합장하였다. 본서는 1821년건릉의 천봉 전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본 능지의 구성은 5개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는 대제학 沈象奎가 작성한 「有明朝鮮國 正宗大王遷陵誌」라는 지문이고, 두 번째는 영돈녕 金祖淳의 上疏文, 세 번째는 신사년(1821) 3월 22일 「賓廳詢議」로 영부사 李時秀 등 48명의 의견이 기록되어 있다. 네 번째는 4월 17일 예조 판서 金魯敬의 계사, 4월 21일에 판부사 韓用龜·金思穆·南公轍·金祖淳 등 8명의 계사, 5월 8일 예조 판서 김노경 등이 올린 계사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다섯 번째 중앙에서 의정부·의빈부·충훈부·규장각·돈녕부 등 5개 기관의 進香文, 지방에서 경상 감사 등 12곳에서의 진향문이 기록되어 있다.
대제학 심상규가 작성한 「유명조선국 정종대왕천릉지」의 내용은, 華城顯隆園 동쪽 기슭에 정조를 大葬하고 健陵이라 하였는데, 그 땅이 淺夷한 곳이어서 聖人을 오래 안장할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1821년 3월 9일 정조의 비 효의왕후가 승하하자 사도세자의 능에 합장하였다고 하였다. 김조순의 상소는 건릉의 천봉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이에 대해 순조는 대행대비도 평일에 크게 걱정하여 누차 자신에게 하교한 일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다음 1821년 3월 22일에 실시한 빈청의 의견 수렴으로 영부사 이시수 등 48명의 의견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은 중앙관과 지방관이 四言으로 작성한 진향문이다.
특성 및 가치
정조의 비 효의왕후가 승하하자 정조의 능인 건릉을 천봉하여 합장하는 전 과정을 소상히 알려 주는 기록이다.

집필자

성봉현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