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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명황후]유릉천봉산릉주감의궤([純明皇后]裕陵遷奉山陵主監儀軌)

자료명 [순명황후]유릉천봉산릉주감의궤([純明皇后]裕陵遷奉山陵主監儀軌) 저자 천봉산릉주감청(遷奉山陵主監廳) 편(編)
자료명(이칭) 裕陵遷奉山陵主監儀軌 , 유릉천봉산릉주감의궤(裕陵遷奉山陵主監儀軌) , [유릉]천봉산릉주감의궤([裕陵]遷奉山陵主監儀軌) 저자(이칭) 천봉산릉주감청(조선) 편(遷奉山陵主監廳(朝鮮)編) , 遷奉山陵主監廳(朝鮮) 編 , 천봉산릉주감청, 이왕직
청구기호 K2-2358 MF번호 MF35-695
유형분류 고서/의궤 주제분류 국왕·왕실/의례/의궤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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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26
· 청구기호 K2-2358
· 마이크로필름 MF35-69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천봉산릉주감청(遷奉山陵主監廳)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1.6 X 28.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6.7×21.0㎝
· 인장 奉謨堂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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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26년純宗妃 純明孝皇后 閔氏를 初葬地에서 순종의 陵이 있는 南楊州 金谷洞으로 遷陵하고 山陵을 조성하는 전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표지는 무늬가 있는 황색 비단으로 장황하였다. 제첨은 주색 비단 테두리를 두른 백색 비단 위에 서명이 墨書되어 있다. 표지 서명 하단에 ‘丙寅’이 표기되어 있다. 서근제는 ‘裕陵遷奉山陵主監儀軌’이다. 본문은 주색인찰 공책지에 10행 20자로 필사되어 있다. 裕康園의 건물과 배설한 물품 등의 그림이 삽입되어 있다. 목록제 면에 ‘奉謨堂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순종비 순명효황후 민씨순종이 황제로 즉위하기 전인 1904년 11월 5일에 33세의 나이로 慶運宮 康泰室에서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 용마산 내동에 안장되었고 능호를 裕康園이라 하였다. 1907년 순종의 즉위로 순명황후로 추봉되었고 능호도 裕陵으로 바뀌었다. 순종이 승하한 1926년순종의 안장지인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천릉과 산릉을 하여 同封異岡陵을 조성하였다. 조선시대 산릉 천봉은 새로운 능의 조성과 옛 능으로부터 옮겨 오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본서의 서명에 천봉과 산릉이 함께 들어간 것이다.
본 의궤는 불분권 1책의 寫本으로, 구성을 살펴보면 時日, 座目, 下敎及上啓, 陵上閣, 隧道閣, 鉤捧機, 別轆轤, 天中鐵, 輪轝平牀, 貼木, 㯐木, 寢殿內排設, 欑宮, 回南首平牀, 退壙內石函準備 등으로 되어 있다.
「시일」에는 유릉으로 천봉하여 산릉을 조성하는 자세한 과정이 일지로 기록되었다. 5월 1일에 유릉으로 천봉하라는 하교가 있었고, 7일에 斬草와 破土를 하고, 14일에 수도각을 설치하였다. 5월 18일 오전 10시에 金井을 파기 시작하여 6월 1일에 봉분을 쌓기 시작하였다. 6월 14일에 覆釜形의 봉분을 만든 후, 17일에 誌石을 안배하였고, 24일에 능에서 제사를 올렸다.
「좌목」에는 천릉도감의 책임자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總護員은 侯爵 尹澤榮이었고, 提轝는 5員으로 洪淳馨, 尹用求, 男爵 金宗漢, 閔丙漢, 南奎熙 등이었다. 都廳은 2원으로 李丙瓚, 李德柱이다. 郎廳은 4원으로 李丙冑, 尹七榮, 金善鎭, 洪鵬杓 등이다. 監造員은 5원, 別監董은 6원, 相地員은 4원이다. 좌목의 所掌分差의 경우 『仁陵遷奉山陵都監儀軌』에는 총호사, 제조, 도청, 낭청, 監造官, 京郎廳, 別工作, 分長興庫, 相地官, 方外地師, 別看役 등을 두었던 것으로 기록된 것에 비하여 명칭, 관원, 분장 업무 등이 매우 축소되어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인 관계로 李王職의 위상이 낮았던 것을 보여준다.
「하교급상계」에는 英王의 하교와 本職 長官·총호원 등이 천릉과 산릉의 과정을 상계한 것이 일자별로 정리되어 있다. 하교와 상계라는 용어도 『인릉천봉산릉도감의궤』 등과 같이 통상의 의궤에는 傳敎와 啓辭·狀啓로 되어 있다. 이러한 용어상의 변화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차이로 보인다.
능상각은 甕家라고도 일컫는 것으로 啓陵을 위해 봉분 위에 설치한 구조물이다. 「능상각」에는 각의 형태, 규모, 소요 물품의 치수와 형태 및 소요량 등을 기록하였다. 수도각은 왕실의 상여 등이 임시로 머무는 곳으로 능상각 남쪽으로 바로 잇대어 장방형으로 세우는 구조물이다. 「수도각」에는 각의 규모, 소요 물품의 종류 및 치수, 수요량 등을 기록하였다. 구봉기는 녹로(속칭 回樑) 기둥 위에 설치하는 네모난 틀이다. 「구봉기」에는 설치 방법과 자재 그리고 규모, 구봉기의 그림 등을 기술하였다. 별녹로는 內梓宮을 외재궁에 진입시키는 기구로 일종의 도르래이다. 「별녹로」에는 녹로의 제작 방법, 자재의 규격, 그림 등을 기록하였다. 천중철은 능상각의 중앙 꼭대기에 매달아 놓아 광의 중심을 바로 잡는 것으로 「천중철」에는 그 형태와 사용 방법과 그림을 그려 놓았다. 윤여평상은 재궁을 실어 줄을 이용해 밀어 넣을 수 있도록 만든 평상으로 「윤여평상」에 제작 방법과 그림을 그려놓았다. 첩목은 윤전할 때에 재궁이 가로 넘어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재궁 안 좌우에 설치하는 것이다. 타목은 외재궁 안의 좌우 첩목 안에 설치하는 것이다. 「침전내배설」에는 침전 안에 배설할 물건의 종류와 수량, 배설도를 그림으로 정리하였다. 찬궁은 재궁을 모시기 위해 빈전 안의 정중앙에 설치하는 작은 집 모양의 구조물로 「찬궁」에 소용 물품과 형태를 그려 놓았다. 회남수평상은 재궁의 앞을 남쪽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기구이다.
특성 및 가치
본 의궤는 순종순명효황후 민씨의 천릉과 산릉을 조성하는 과정의 각종 의논, 기구, 규격, 종류, 의식 절차, 참여자 등을 구체적이면서 실증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산릉도감에서 작성했던 의궤와 비교하면 명칭, 규모, 내용 등에서 상당한 정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이왕가의 수장으로 격하된 왕실의 위상과 관련된 의식을 보여주는 의궤로서 의미가 있다.

집필자

성봉현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