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원신사례(綏慶園新事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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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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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
· 청구기호 | K2-2354 |
· 마이크로필름 | MF35-436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 가치정보 | 귀중본 , 유일본 |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 단체/기관명 | 담당자 | 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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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직(李王職) 편(編) |
형태사항
· 크기(cm) | 28.1 X 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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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필사본(筆寫本)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1책(冊) |
· 판식 | 반곽(半郭) 21.3×15.9㎝ |
· 인장 |
藏書閣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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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정보
내용
정의
暎嬪 李氏(?~1764)의 묘소인 綏慶園의 운영에 대한 기본 규정과 연간 수입ㆍ지출 내역을 항목별로 기재한 책이다.서지사항
表紙書名이 표지의 중앙에 墨書되어 있다. 표지에는 만자무늬의 菱花紋이 사용되었다. 본문은 모두 12張으로 上下向朱魚尾 李王職 印札空冊紙에 5行14字로 筆寫되어 있다. 이 인찰공책지는 원래 10행으로 되어 있으나 2행을 1행으로 삼아 필사하였다. 본문 첫 장에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체제 및 내용
陵事例는 왕릉 수호의 책임을 맡은 관리가 능의 유지, 관리, 제향에 들어가는 비용을 항목별로 기록하여 능 운영에 실무적으로 참조하였던 책이다. 수경원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사친인 영빈 이씨의 묘소이다. 묘소와 사우의 명칭은 ‘義烈’로 정했으나, 1788년(정조 12)에 묘소와 사당의 명칭을 ‘宣禧’로 개칭하였다. 1899년(광무 3)에 장조를 추숭한 후 사친인 영빈의 사당과 묘소에 궁원의 식례를 적용하여 선희궁, 수경원으로 고쳤다. 수경원은 본래 지금의 연세대학교 안에 있었으나, 지금은 서오릉 경내로 이전되었다.본서를 만들게 된 경위는 서두에 잘 서술되어 있다. 1899년 수경원으로 새로 봉해진 후 칙명에 의해 楊根 梧濱驛 답 22석 19두락과 전 80일경, 충주 佳興驛의 답 18석락과 전 32일경, 파주 馬山驛의 답 10석락과 수원 莞千庫 修理費條 및 경기 각 읍의 復戶 6결을 새로 획급받았다. 이를 토대로 운영할 때 일정한 규례에 따라야 하는데, 옛 묘소로 있을 때 位土 및 復戶는 이미 균등하게 분배해 왔으므로 새로 받은 것을 분배하는 일에 대해 규정을 마련하고 등록하여 1책으로 완성하였다. 파주역의 답 10석락은 양 守奉官의 늠료로 쓰며 서원이 추수하여 월별로 분배하여 지출하며 해가 지나기 전에 체직되면 근무한 달수를 헤아려 추수 후 주도록 하는 등 각 전답의 운용 규정을 마련하였다. 이 밖에 제향 시의 지공, 3월부터 9월까지 매일 점심 지공, 등유 및 南草의 지공, 奉審·禁護·掃雪·除草 등의 임무 수행, 卜馬의 운용 등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특성 및 가치
조선 말기에 왕실 능원 운영의 실제와 그를 위한 출납 내역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기록이다.집필자
김지영·규장각한국학연구원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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