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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원]완의([綏慶園]完議)

자료명 [수경원]완의([綏慶園]完議) 저자 이왕직(李王職) 편(編)
자료명(이칭) 完議 저자(이칭) 綏慶園(朝鮮) 編
청구기호 K2-2352 MF번호 MF16-30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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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사년미상(寫年未詳)
· 청구기호 K2-2352
· 마이크로필름 MF16-30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이왕직(李王職)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8.0 X 20.4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9×16.1㎝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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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暎嬪 李氏(?~1764)의 묘소를 수호하는 官員, 員役, 山直 등이 모여 약조한 문서를 이왕직에서 등사한 것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이 표지의 중앙에 墨書되어 있다. 표지의 좌측 하단에는 ‘綏慶園’이라는 기록이 있다. 본문은 모두 6張으로 上下向朱魚尾 李王職 印札空冊紙에 5行 20字로 筆寫되어 있다. 이 인찰공책지는 원래 10행으로 되어 있으나 2행을 1행으로 삼아 필사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 완의는 宣喜墓[수경원]의 관원, 원역, 산직 등이 모여 조목조목 지켜야 할 사항을 열서하여 상호 약조한 문서이다. 선희묘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사친인 영빈 이씨의 묘소이다. 묘소와 사우의 명칭은 ‘義烈’로 정했으나, 1788년(정조 12)에 묘소와 사당의 명칭을 ‘宣禧’로 개칭하였다. 1899년(광무 3)장조를 추숭한 후 사친인 영빈의 사당과 묘소에 궁원의 식례를 적용하여 선희궁, 수경원으로 고쳤다. 수경원은 본래 지금의 연세대학교 안에 있었으나, 지금은 서오릉 경내로 이전되었다.
첫머리에 “선희묘소英廟甲申年(1764) 봉안한 이래로 위에는 官宇 兩員이 있고 중간에는 員役 4인이 있고 아래에는 逃山 산직 4명과 臥牛山 산직 1명이 있으며 또 立山直 30명이 있다.”고 한 후 상하 인원이 각각 그 직임을 다하고 공무를 받들며 서로 속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적었다. 아래에는 각각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또한 일이 많고 어려우나 생계를 꾸려 나가기에는 부족한 도산 산직을 위해 나누어 준 麥田을 빼앗지 않도록 한다는 약조, 각 구성원들에게 차등을 두어 거둔 傳授錢의 운용 규정, 새로 차정된 원역의 許參錢 규정, 교체 시기에 따른 兩麥, 瓜, 苦草 등의 분배 규정 등을 상세하게 약조하였다.
말미에 관원 2인의 수결이 있고 ‘庚寅年月日’이라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경인년’은 1890년(고종 27)으로 추정된다.

집필자

김지영·규장각한국학연구원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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