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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릉봉릉도감의궤(溫陵封陵都監儀軌)

자료명 온릉봉릉도감의궤(溫陵封陵都監儀軌) 저자 봉릉도감(封陵都監) 편집(編輯)
자료명(이칭) 溫陵封陵都監儀軌 저자(이칭) , 溫陵封陵都監(朝鮮) 編 , 온릉봉릉도감(溫陵封陵都監 編)
청구기호 K2-2351 MF번호 MF35-53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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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서비스분류 국가문화재
· 작성시기 1739(영조 15년)
· 청구기호 K2-2351
· 마이크로필름 MF35-53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봉릉도감(封陵都監) 편집(編輯)

형태사항

· 크기(cm) 43.8 X 33.2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5.8×26.7㎝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壹品奉使之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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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11대 왕 中宗廢妃 愼氏(1487~1557)를 왕후로 복위하고 능을 새로 조성하는 전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溫陵都監儀軌’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 ‘全’으로 표기되어 있다. 앞표지의 우측에는 ‘乾隆四年己未三月 日 英宗十五年(1739)’이라는 기록이 있다. 書根題는 ‘溫陵都監儀軌 端敬王后’이다. 본문은 印札空冊紙에 12行 24字로 筆寫되어 있다. 目錄이 있는 장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으며 본문에 ‘壹品奉使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뒤표지 裏面 하단에는 ‘大正七年(1918)十月日改修’가 墨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조선시대에 왕이나 왕후가 세상을 떠나면 국장을 위한 세 도감이 설치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왕릉을 조성하는 일을 담당하는 山陵都監이다. 후대의 역사적 평가에 의해 추후에 왕이나 왕후의 지위를 가지게 되면, 본래의 묘소를 왕릉급으로 새로이 조성하게 되는데 이를 봉릉이라 하며 奉陵都監에서 이 일을 주관하였다.
단경왕후는 본관이 居昌이며, 愼守勤의 딸이다. 1499년(연산 5)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과 결혼하여 부부인에 책봉되었고, 1506년 중종이 반정으로 즉위하자 왕후가 되었다.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반대하다가 살해되자, 반정공신들의 압력으로 폐위되었다. 당시부터 왕후의 폐출이 잘못되었다는 여론이 있었고, 1515년(중종 10) 金淨, 朴祥 등이 복위 운동을 펴기도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영조단경왕후의 복위 논의는 1739년(영조 15) 3월 11일 金台南의 상소로부터 시작되었고,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거쳐 3월 25일 복위가 결정되었다. 복위부묘도감의 총책임자인 우의정 송인명봉릉도감도제조를 겸하였고, 尹惠敎, 趙最壽, 朴師正 등이 제조로 작업을 총괄하였다. 봉릉 이전의 묘소는 석인 1쌍, 망주석 1쌍, 상석 1좌, 장명등 1좌의 석물이 있었고, 표석에는 ‘폐비신씨지묘’라고 새겨져 있었다. 능으로 조성하면서 옛 석물들은 모두 묻고, 단종 비의 능인 사릉의 예에 따라 석물들을 새로 만들었다. 1739년 4월 16일에 옛 묘소를 허무는 고유제를 행하였고, 5월 20일 묘시에 奉陵하고 安陵祭를 행하였다.
의궤는 복위 상소 및 수의 과정의 기록으로 시작된다. 시일과 좌목에 이어 계사질에는 왕의 전교와 신하들의 계사를 날짜별로 기록하였다. 봉릉에 대한 논의 과정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移文秩, 稟目秩, 甘結秩에는 인력 동원이나 물자 조달 등 업무 협조를 위하여 관련 관서들에 보낸 문건들이 수록되어 있다. 禮關秩에는 봉릉 의식의 제반 절차와 관련하여 예조에서 보낸 關文이 실려 있다. 봉릉 의식이 모두 끝난 후 도감의 일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을 적어 올린 書啓와 이들에 대한 포상 내역을 기록한 1739년 5월 8일 자 備忘記가 실려 있다. 이어 의궤 편찬과 관련된 사항들을 정리해 놓은 儀軌事目이 있다. 御覽用 1건, 議政府, 春秋館, 禮曹, 赤裳山城 分上用 각 1건씩 총 5건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에는 各所 의궤가 수록되어 있다. 三物所에서는 석회, 가는 모래, 황토를 섞어 반죽해 관의 언저리를 메우는 데 쓰는 三物을 마련하고 玄宮을 조성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造成所에서는 丁字閣이나 甕家 등을 축조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爐冶所에서는 각종 철물을 제작하는 일, 大浮石所에서는 능 주변의 大石物을 조성하는 일, 補土所에서는 능 주변의 흙을 돋우는 일, 小浮石所에서는 능 주변의 부속 건물에 소용되는 석물을 제작하는 일, 別工作에서는 각 소에서 필요로 하는 비품을 마련하는 일, 分長興庫에서는 鋪筵, 雨備 등을 준비하는 일, 燔瓦所에서는 기와, 벽돌 등을 제작하는 일, 輸石所에서는 석물을 운반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특성 및 가치
후대의 역사적 재평가에 의해 지위가 회복된 왕후의 묘소를 다시 꾸며 능으로 조성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당시 조성된 능의 규모와 형식, 배치된 석물에 대한 정보, 이를 준비하기 위한 행정적 절차들과 소용된 비용, 동원된 인력 규모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왕릉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당시의 정치·사상사, 사회경제사, 문화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구중회, 『능묘와 풍수 文化』, 국학자료원, 2008.
국립문화재연구소, 『역사의 숲, 조선왕릉』, 눌와, 2007.
한국문화연합회 경기도지회 편, 『京畿道 陵園總覽』, 2007~2008.

집필자

김지영·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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