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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휘원사중삭제축식(永徽園四仲朔祭祝式)

자료명 영휘원사중삭제축식(永徽園四仲朔祭祝式)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永徽園四仲朔祭祝式 저자(이칭) 李王職 編
청구기호 K2-2350 MF번호 MF35-2909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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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11
· 청구기호 K2-2350
· 마이크로필름 MF35-2909
· 기록시기 1911年 以後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45.6 X 34.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6.0×34.5㎝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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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고종의 후비인 貴妃 嚴氏(1854~1911)의 묘소인 永徽園에서 제향을 올릴 때의 축문 격식을 모은 책이다.
서지사항
書腦 하단에 ‘共二’라고 표기되어 있다. 본문은 모두 2張으로 四周單邊의 烏絲欄에 15行 字數不定으로 筆寫되어 있다. 본문에는 두꺼운 壯紙를 사용하였다.
체제 및 내용
영휘원은 ‘嚴妃’라고도 불리는 귀비 엄씨의 묘소로 1911년 7월 엄비가 세상을 떠난 후 조성되었다. 황귀비 엄씨는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5세 때 아기 內人으로 궁궐에 들어갔다. 명성황후를 측근에서 모시는 內殿侍衛尙宮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1885년(고종 22) 고종의 承恩을 입었으나 이를 계기로 명성황후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궁 밖으로 쫓겨났다. 1895년(고종 32) 乙未事變으로 명성황후가 세상을 떠난 후 궁으로 다시 돌아왔고, 1897년(광무 1) 皇子 李垠을 낳고 貴人에 봉해졌다. 1900년(광무 4) 이은이 親王에 봉해짐에 따라 淳嬪에 책봉되었다. 1901년(광무 5) 皇妃로 책봉되었으며, 1903년(광무 7) 皇貴妃에 進封되어 사실상의 國母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책에는 영휘원에서 四仲朔祭를 올릴 때의 축문 격식 4종과 朔望祭 축식 2종, 淸明祭 축식 1종이 수록되어 있다. 사중삭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중간 달에 올리는 제사이다. 삭제와 망제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올리는 제향이며, 청명제는 능에서 올리는 속절제향으로 한식일에 올리는 제사이다. 제향의 축식에는 각각 太王使子王이 純獻貴妃 嚴氏에게 올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에 능제를 지낼 때 祝文의 격식과 능의 享官이 어떠한 절차에 의해 의식을 거행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國朝五禮儀

집필자

김지영·규장각한국학연구원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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