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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원위토(順昌園位土)

자료명 순창원위토(順昌園位土) 저자 장례원(掌禮院) 편(編)
자료명(이칭) 順昌園位土 저자(이칭) 掌禮院(朝鮮) 編 , 장예원(조선) 편(掌禮院(朝鮮)編)
청구기호 K2-2340 MF번호 MF16-29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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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70(고종 7년)
· 청구기호 K2-2340
· 마이크로필름 MF16-29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유일본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장례원(掌禮院)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3.8 X 21.4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 掌禮院印, 査檢委員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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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아들인 順懷世子(1551~1563)와 恭懷嬪尹氏(?~1592)의 무덤인 순창원의 位土에 관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
서지사항
表紙를 改裝한 것으로 보이나 개장 기록은 없다. 본문은 여섯 장으로 匡郭과 界線이 없는 楮紙에 筆寫되어 있다. 본문에 ‘掌禮院印’과 ‘査檢委員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지금의 고양시 서오릉 안에 위치해 있는 순창원순회세자공회빈 윤씨의 무덤이다. 원래 왕실의 능원묘 제도에 따라 순회묘로 조성된 후 관리되어 오다가, 1870년(고종 7) 능원묘 제도를 정비할 때 園으로 승호되었다. 따라서 필사된 시기는 1870년 이후이다.
내제는 ‘順昌園位土楊州延曙驛沓中移來’라 적고 있는데, 이를 통해 순창원의 위토는 양주 서역의 논에서 옮겨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위토란 제사와 관련된 일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마련된 토지로, 실제 기록된 내용에는 위토로 사용된 田畓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먼저 논의 경우, 延曙川, 磚石里 下, 宮村, 廣大谷, 孝敬洞에 위치하고 있다. 논이 위치한 마을별로, 논의 등급, 면적, 전호 및 소작인의 성명, 소작인의 교체 여부, 해당 논의 도지와 결세의 액수 등을 파악하기 쉽게 적고 있다. 마지막에 논에서 소출되는 양의 총액을 적고 있다. 밭의 경우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문서를 작성할 당시 전답의 등급을 재평가한 것으로 보이는 표시가 상단에 보이는 점이 눈에 띈다. 또한 순창원의 위토에 관한 사실을 검토하고 확인한 인장이 군데군데 찍혀 있다.
특성 및 가치
19세기 말 왕실에서 순창원을 관리하는 데 실제로 소용되는 위토의 면적과 경작 방식, 소출량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집필자

김지영·한국학중앙연구원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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