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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사릉도감의궤([定順王后]思陵都監儀軌)

자료명 [정순왕후]사릉도감의궤([定順王后]思陵都監儀軌) 저자 산릉도감(山陵都監) 편(編)
자료명(이칭) 思陵都監儀軌 , 사릉도감의궤(思陵都監儀軌) 저자(이칭) 봉릉도감(封陵都監 編) , , 封陵都監(朝鮮) 編
청구기호 K2-2318 MF번호 MF35-529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陵·園·墓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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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서비스분류 국가문화재
· 작성시기 1699(숙종 25년)
· 청구기호 K2-2318
· 마이크로필름 MF35-529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산릉도감(山陵都監)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4.5 X 33.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4.4×27.5㎝
· 인장 奉使之印,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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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698년(숙종 24) 11월부터 1699년(숙종 25) 2월까지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의 묘를 노산대군부인묘에서 思陵으로 승격시켜 封陵할 때, 이를 총괄한 봉릉도감에서 작성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하단에 ‘全’으로 표기되어 있다. 앞표지의 우측에는 ‘康熙三十七年戊寅十月 日 肅宗二十四年(1698)’이라는 기록이 있다. 書根題는 ‘思陵都監儀軌 定順王后’이다. 본문은 印札空冊紙에 12行 24字로 筆寫되어 있다. 目錄의 앞에는 채색된 四獸圖가 있다. 목록이 있는 장에 ‘李王家圖書之章’과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 날인되어 있으며 본문에 ‘奉使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698년(숙종 24) 魯山大君단종으로 追復되자 그의 부인 송씨 또한 定順王后로 추복되었다. 정순왕후 송씨(1440~1521)는 宋玹壽의 딸로, 1454년(단종 2) 1월 10일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비로 간택되었고, 22일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 후 단종1455년 윤6월 세조에게 선위하고 上王이 되면서 왕비는 懿德王大妃에 봉해졌다. 그러나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난 이후 결국 1467년(세조 13) 6월 魯山君으로 降等되어 寧越로 유배되고 정순왕후도 부인으로 降封되었다. 그러나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노산군의 작은아버지인 錦城大君이 다시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다시 단종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다가 10월에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다. 이때 단종은 열일곱 살, 정순왕후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 후 단종의 부인 송씨는 정업원으로 쫓겨나 1521년(중종 16) 6월 4일 향년 82세로 죽었다. 중종은 王子君夫人의 예로써 장사하도록 하였다. 이때 단종의 누이인 敬惠公主의 남편 寧陽尉 鄭悰의 가문인 해주정씨 가의 묘역에 묻혔다.
1698년 9월 30일에 올린 前 結成縣監 申奎의 상소를 계기로, 종친과 문무백관 491명의 獻議를 거친 후에 10월 28일 숙종은 비망기를 내려 단종의 복위를 결정하였다. 11월 6일 오랜 논의 끝에 노산군의 묘호를 ‘단종’으로, 능호를 ‘장릉’으로 결정하고, 노산군부인 송씨의 시호를 ‘정순’으로, 능호를 ‘사릉’으로 정하였다.
사릉의 조성은 봉릉도감에서 담당하였으며, 판중추부사 崔錫鼎도제조로 삼았다. 최석정은 또한 단종의 능인 莊陵을 조성하는 봉릉도감도제조도 맡았는데, 두 능을 봉릉하는 일을 함께 총괄하였다. 책의 목차는 座目, 啓辭, 移文, 甘結, 各所 三物所, 造成所, 爐冶所, 大浮石所, 補土所, 小浮石所, 別工作, 分長興庫, 燔瓦所, 輸石所, 附 儀軌, 書啓, 論償이다. 맨 마지막에 ‘思陵都監約束’을 부기하였다. 사릉은 추봉된 능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사릉 주변의 私墓를 살펴 이장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따라서 海平府院君 鄭眉壽를 비롯한 해주정씨 가의 묘를 처리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눈에 띈다.
특성 및 가치
원래 어람용 1건과 분상용 4건(의정부, 예조, 춘추관, 적상산사고)이 작성되었으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어람용(1책) 1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정부 분상용본(奎 14821) 1건, 적상산사고 분상용으로 작성되었던 장서각 소장본(1책) 1건이 남아 있다.
17세기 말 숙종단종 복위와 관련된 장릉사릉의 봉릉 과정과 그 의미에 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조선의 사회경제사, 미술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왕릉 연구를 심화시키는 데 유용하다.

참고문헌

이범직, 「조선시대 왕릉의 조성 및 그 문헌」, 『한국사상과 문화』 36, 2007.
이현진, 「조선후기 단종 복위와 충신 현창」, 『사학연구』 95, 2010.
이희중, 「17·18세기 서울 주변 왕릉의 축조, 관리 및 천릉 논의」, 『서울학연구』 17, 2001.
장경희, 「조선후기 산릉도감의 장인 연구-왕릉 정자각과 석의물의 제작과정을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25, 2007.
장경희, 「조선후기 왕릉 정자각 내부 의물 연구-『산릉도감의궤』를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33, 2010.
한영우, 『조선왕조의궤』, 일지사, 2005.

집필자

김지영·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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